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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국적 선사가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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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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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Q. 우리나라 정부·관계기관들이 ‘국적 선사’ 구조조정을 논의한다는 얘기가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합니다. 해운회사는 뭔지 알겠는데, 국적 선사는 뭔지 궁금해요.


한국국적 대형 원양해운사…화물 나르는 수출입 역군이죠

무역의존도 높은 우리나라 산업
100여국에 항로 확보, 운송 맡아
민간이지만 나라의 산업 토대
국가마다 자국 선사에 자금 지원

A. 틴틴 여러분, 국적 선사(國籍船社)는 액면 그대로는 특정 국가의 국적을 지닌 해운회사를 말합니다. 그러나 통상 태평양·대서양 등 바다를 정기적으로 건너다니면서 각종 화물을 운반하는 대형 원양 해운사를 뜻해요. 요즘 뉴스에서 ‘(한국) 국적선사’를 말할 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두 곳을 지칭하는 겁니다.

국적 선사는 사실 공기업이나 정부 기관이 아닌 민간 해운사입니다. 그럼에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대한민국 국적을 강조하는 ‘국적선사’라고 부르고, 정부까지 걱정하는 이유는 해운업이 다른 산업의 토대가 되는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국적의 해운사는 많지만, 전 세계 항로를 넘나드는 대한민국 국적의 대형 원양 컨테이너 회사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단 두 곳뿐입니다.

한국 같이 자원이 부족하고 3면이 바다인 국가에서는 수출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대외 무역의존도는 94.5%에 달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원자재를 실어오고 이를 가공해서 다시 다른 나라에 팔려면 물동량을 실어 나르는 해운업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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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선박이 우리나라 수출입화물의 99.7%를 운송하고 있어요. 원유·철광석·연료탄 등 원자재는 선박 수송 비율이 거의 100%에 가깝습니다. 양대 국적선사는 이 과정에서 100여개국을 거쳐 가는 항로를 확보하고 해운동맹을 구축해 우리나라 수·출입을 책임지고 있어요.

비행기나 기차로 운반하는 수출입 화물 비율이 생각보다 적다고요. 비행기로 화물을 운송하면 빠르긴 한데 너무 비싸요.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옮기려면 비용이 중요해요. 지리적으로 북한이 가로막고 있어서 기차로 운송하기는 불가능하죠. 배는 다른 운송수단보다 조금 느리긴 하지만 그만큼 운송비도 저렴하고 대량으로 먼 거리를 실어 나를 수 있어 가장 선호하는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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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정부가 왜 국적선사를 걱정하는지 알아볼게요. 해운업은 경기를 많이 탑니다. 세계 경기가 좋아지면 물건이 많이 팔리고, 배로 운반할 화물도 증가합니다. 반면 경기가 침체하면 교역량이 줄어들어 해운업도 힘들어집니다.

해운업계에서는 화물을 날라주고 받는 운임을 나타내는 지표는 2가지가 있어요. 컨테이너 화물의 경우 ‘중국발컨테이너운임지수(China Containerized Freight Index)’를 가장 많이 써요. 상하이 항운교역소가 집계하는 세계 컨테이너 시황을 객관적으로 반영한 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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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크 화물의 경우 발틱운임지수(Baltic Dry Index)가 있어요. 발틱해운거래소가 산출하는 운임지수죠. 최근 두 지수가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운임이 저렴하게 책정됐다는 건, 그만큼 물동량이 없다는 의미겠죠. 정부가 걱정하는 첫 번째 이유예요.

둘째, 국적선사가 배를 너무 비싸게 빌렸어요. 해운사들은 직접 보유한 배(사선)도 있지만, 배를 빌려서(용선) 화물을 운송하기도 해요. 이때 배를 빌리는 대가로 치르는 비용을 용선료라고 합니다. 배는 통상 5~25년 장기간 동안 빌려 쓰는데, 계약 당시 약속한 용선료를 매달 계속 줘야 해요.

문제는 우리 국적선사가 한창 해운업이 활황일 때 배를 빌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해운사는 비싸게 장기 용선계약을 맺었어요. 빌린 배는 많아졌는데 이제 와서 실어 나를 화물이 줄어들자 국적선사들은 난처해졌어요. 이제 열심히 화물을 운반해도 본전도 못 뽑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실제로 현대상선은 지난해 매출액(5조8000억원)의 32%에 달하는 1조9000억원을 배 주인들에게 용선료로 지급했어요. 한진해운도 연간 9000억원 이상을 용선료로 내고 있습니다.

셋째, 여기에 유럽의 일부 해운사가 화물 운송 가격을 크게 낮춰 버리면서 불난 곳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는 2011년 유럽 항로에 70여 척의 대형 컨테이너선을 투입했어요. 경쟁사인 3위 프랑스 CMA-CGM도 미국 서부에 1만8000TEU급 선박을 6척 투입해 맞불을 놓았습니다. 운임 가격이 하락했고 마침 세계적 불경기와 맞물려 수익성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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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사가 가격을 낮추면 물건을 날라야 하는 사람들(화주)에겐 좋은 게 아니냐고요. 물론 당장은 그렇죠. 그런데 손해보고 장사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상가 이하로 운임을 낮추는 이유가 있겠죠. 왜 일까요.

틴틴 여러분도 학교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때가 있죠. 학교 앞에 수퍼마켓이 여러 개라면 아이스크림을 비싸게 팔고 싶어도 팔 수 없을 거예요. 학생들이 아이스크림을 싸게 파는 곳으로 몰릴 테니까요. 그런데 학교 앞에 수퍼마켓이 딱 하나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스크림 가격을 두세 배로 올려도 먹고 싶으면 돈을 많이 주고 사먹어야 할거예요. 글로벌 해운사도 이런 독점 수퍼마켓이 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일단 싼값에 화물을 운송해주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정부와 관계기관이 모두 모여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이 때문이랍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수출이 주력인 우리나라에서 해운업이 망가지면 자칫 수출 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 있거든요.

국적 선사는 국가경제에서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자국 선사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덴마크는 자국 선사인 머스크에 5억2000만달러(약 6000억원)의 수출신용기금을 지원하고 배 만들라고 62억 달러(약 7조원)를 별도로 빌려줬어요. 독일 정부도 자국 선사 하파그로이드에 18억 달러(약 2조1000억원) 규모의 지급보증을 서줬고, 현금으로 7억5000만 유로(1조원)를 지원했어요. 프랑스 국부펀드는 자국 선사 CMA-CGM에 1억5000만 달러(약 1750억원)를 지원했습니다.

공산당 체제인 중국은 말할 것도 없죠. 중국수출입은행·중국은행 등 금융권이 전방위적으로 자국 해운사에 돈을 쏟아 붓고 있어요. 코스코(COSCO)와 같은 글로벌 해운사는 물론 이보다 규모가 작은 민영 해운 기업도 적게는 수억 달러에서 많게는 수백억 달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도·일본 등 해운업이 발달한 다른 국가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국가 간 전쟁이죠.

이에 맞서 우리 국적선사도 당장의 급한 불을 열심히 진화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현대상선은 빚을 상당부문 조정하는데 성공했고, 한진해운도 ‘디 얼라이언스’라는 해운동맹 회원사가 되는 등 하나 둘 씩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있어요.

많은 화물을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큰 배가 많을수록 운송비가 떨어지기 때문에 유리한데요. 정부는 빚을 어느 정도 줄이면(부채비율 400%이하) 해운사가 배를 발주할 수 있게 1조4000억원 규모의 펀드도 조성한다고 하네요. 틴틴 여러분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좋은 소식을 기다려 봐요.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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