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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미·러 불화 시대의 북핵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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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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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근래 북한을 둘러싼 외교지형이 복잡다단하다. 이수용의 방중과 미사일 실험에 이어 안보리 의장성명과 자금세탁국 지정이 나오고, 여기에 미·중 마찰까지 섞여들고 있다. 이런 국면을 보면서 북핵의 난이도가 더해지고 있으며, 걸맞은 대응이 긴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의 현상은 각국의 복잡한 셈법이 엇갈린 결과이니 거기서부터 살피는 것이 유용하다. 중국은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지만 북한이 갖는 지정학적 이해도 중시한다. 최근 들어서는 대미 불화도 고려 요소가 되었다. 이 때문에 비핵화를 위주로 보면 중국의 행보는 혼란스럽다.

이수용의 방중은 중국의 이러한 처지를 드러냈다. 당초 방문 목적은 중·북 관계 복원이었을 터이고 시진핑 국가주석 예방도 추진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방중 기간 중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한 데 있었다. 이런 행태는 중국에도 방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안보리가 의장성명으로 규탄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국가원수가 규탄 대상의 대표를 접견한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다. 중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밉지만 접견해서 보내자는 고심이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비핵화와 지정학, 대미 대결 사이에서 임시방편식 대응을 한 인상이다.

러시아의 행보도 유사하다. 러시아에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래 대미 대결이 주 고려 요소다. 따라서 러시아는 한·미의 억지력 강화를 과도한 군사 정책으로 본다. 급기야 러시아는 5월 북한의 미사일 실험에 대한 안보리 의장성명에 제동을 걸고 군사 활동 축소를 추가하자고 했다. 의장성명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하고 미국이 의장성명을 재추진하자, 러시아는 군사 활동 문구가 없는데도 즉각 동의했다. 비핵화와 대미 대결 사이에서 임시방편의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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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은 북한 비핵화 외에 중국을 ‘보편적’ 규범 속에서 관리한다는 전략적 의도를 갖고 있다. 미국은 남중국해로부터 무역·환율·사이버 이슈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새로운 질서를 쓰게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중국은 견제라며 반발한다. 미·러 관계도 우크라이나 사태 이래 제재 국면이고 러시아는 반격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미국 주도로 안보리 의장성명과 자금세탁국 지정이 나왔다. 성과는 중·러에 달려 있는데 분위기상 적극 호응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이처럼 미·일도 비핵화 외에 다른 정책 목표가 있으니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막는 일이 생긴다. 북핵 관련 최대 영향력을 가진 미국의 사려 깊은 외교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북한은 이러한 사정을 악용한다. 북한은 언제든 미·중·러 경쟁의 틈을 비집고 운신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김정은 치하의 북한은 비핵화 목표를 부인하며 대량살상무기(WMD)의 실험 강행을 예고하고, 경제를 위해 중·러와 관계 복원에 나서고 있다. 미사일 실험 후 시 주석 예방이 성사됐기 때문에 북한은 중국의 양해를 얻었다고 볼 것이다.

상황이 이러므로 우리에게는 걸맞은 대응이 요구된다. 북한 비핵화 명분이 구심력이라면 각국의 전략적 의도는 원심력이다. 한국은 구심력을 강화하고 원심력을 줄여야 하며, 각국이 경쟁을 하더라도 북핵 위협에는 공조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란 핵의 경우 비핵화 구심력이 미·러·중 경쟁이라는 원심력보다 커서 협상 구도가 국제사회 대 이란이 되었고, 타결이 가능했다. 북핵은 원심력이 더 크니 협상 구도는 한·미·일 대 북·중·러가 된다.

이 지점에서 짚고 싶은 몇 가지 유의점이 있다. 우선 한·미·일 3자 회동이다. 3자 공조가 중요하지만 중·러와의 공조에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미·중·러 불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3자 회동은 북한의 도발이나, 중·러의 부정적 행보에 대응하는 식으로 운용하는 것이 좋다. 이런 관점에서 근래의 3자 회동들이 실제적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둘째로는 제재 위주의 대북 정책이다. 지금 제재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나, 제재만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고집하면 중·러의 협조를 얻기 어려워진다. 전략적 원심력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다. 사드는 한·미의 안보 이해와 중·러의 전략적 이해가 충돌하는 첨예한 원심력 소재다. 그 배치를 한·미 간에 협의하기로 한 이상 한국은 엄중한 게임 와중에 들어섰다. 한국이 할 일은 사드를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의 안보 이해에 특화하여 다루고,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으로 보려는 중·러와 적극 소통하는 것이다.

우리가 소극적으로 미국에 끌려가는 모양이 되면, 중·러는 사드가 한국의 안보 사안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 사안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자칫하면 북핵 공조의 구심력은 사드를 둘러싼 강대국 간 대립이라는 원심력에 압도될지 모른다. 미·중·러 불화 시대에 우리 북핵 외교의 창의성·유연성·적극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망된다.

위 성 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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