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보다 웃돈이 좌우하는 분양시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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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호 18면

대한민국이 아파트 분양시장에 풍덩 빠졌다. 구조조정 등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고 경제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데도 분양시장은 홀로 시끌벅적댄다. 거센 바람이 먼지를 몰고 오듯 청약 열풍은 주택시장을 덮칠 먹구름을 품고 있다.


올해 주택시장은 지난해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주택매매거래가 줄고 가격 상승세가 꺾였다. 전·월세 거래도 주춤한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올 들어 4월까지 주택매매거래량이 전국적으로 28만5781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8% 줄었다. 주택경기가 워낙 좋았던 지난해 말고 20011~15년 연평균과 비교해도 3.9% 적다. 올 들어 5월까지 전국 집값은 제자리걸음인 0.09% 올랐다. 2013년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다.


분양시장은 완전히 딴 세상이다. 리얼투데이는 5월까지 전국적으로 14만3299가구가 분양됐다고 집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5만519가구)보다 불과 4.8% 감소했다. 지난해 분양 봇물(연간 52만여가구)이 터져 올해는 30% 정도 줄어들 것이란 연초 업계의 예상이 크게 빗나갔다. 청약자들이 몰리자 업체들이 공급을 늘렸기 때문이다. 올 들어 5월까지 전국 1순위 평균 경쟁률이 12.7대 1로 지난해 같은 기간(7.9대 1)보다 높다. 부산에서 청약경쟁이 가장 치열해 경쟁률이 90.4대 1에 달했다. 4월 부산시 우동에 나온 마린시티자이는 1순위 450.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분양물량 지난해와 별 차이 없어재고주택 시장과 신규 분양시장의 어긋한 행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집값 전망에 대한 기대가 많이 꺾였는 데도 분양시장이 북적대는 것은 ‘집’이라는 상품보다 다른 것에 현혹돼서다. ‘돈’(분양권 웃돈)이다. 분양 받으면 짭짤한 웃돈을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분양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분양시장에 당첨만 되면 웃돈이 떨어지는 ‘대박’ 기대가 주택 수요·공급 논리를 밀어낸 셈이다.


이는 계약과 동시에 대거 이뤄지는 분양권 전매에서 알 수 있다. 중앙일보가 5월 청약경쟁률 상위 5개 단지의 분양권 전매현황을 조사한 결과 계약 이후 한달 이내에 절반 가량의 주인이 바뀌었다. 손바뀜이 심한 단지는 전매율이 80%를 넘기도 했다. 분양시장에 ‘단타족’이 판을 친다. 이들을 실수요로 보기는 어렵다.


도대체 웃돈이 얼마나 될까. 리얼투데이가 국토교통부에 신고된 분양권 실거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거래된 분양권 4만1794건 가운데 43.7%의 웃돈이 1000만~2000만원이었다. 암울한 경기에 컴퓨터의 주사위 놀이 같은 추첨에 당첨되는 ‘운발’만 터지면 수천만원을 벌 수 있는데 어쩌면 청약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인지 모르겠다.


경제가 순전히 실수요만으로 돌아갈 수 없고 투기수요가 어느 정도 끼어야 하지만 지나치면 심각한 후유증이 뒤따른다. 주택시장을 덮칠 입주 폭탄이다. 이미 지난해 52만여가구가 분양돼 2017년 이후 입주물량이 크게 늘면서 공급과잉 우려가 제기됐는데 계속된 분양 급증으로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부동산114는 5월까지 분양된 아파트의 입주예정시기를 바탕으로 2017년 36만가구, 2018년 34만가구의 아파트가 입주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4~16년 연평균 입주물량 27만가구보다 33% 늘어난 물량이다. 입주물량이 절대적으로 많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급증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허겁지겁 먹는 과식이 소화불량을 가져오듯 주택시장에 소화될 시간적 여유 없이 입주가 들이닥치면 탈이 날 수 밖에 없다.


2017~18년 아파트 70만 가구 입주올 상반기 높은 청약경쟁률에 자극 받아 하반기에도 분양물량이 별로 줄어들 것 같지 않다. 부동산인포는 임대와 재건축 등 조합원 몫을 제외한 일반분양분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올 상반기 15만여가구가 분양되는 데 이어 하반기엔 이보다 많은 20만가구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올 한해 35만여가구다. 지난해(38만여가구)보다 8% 적다. 임대 등을 포함한 전체 물량은 48만가구로 추산된다. 이렇게 되면 입주폭탄이 2019년까지 이어지게 된다.


과다 입주에 따른 주택시장 소화불량은 가격 하락, 역전세난 등을 가져온다. 실제로 올해 입주가 크게 늘어난 대구가 본보기다. 올해 대구 아파트 입주물량이 지난해보다 80% 가까이 늘어난다. 지난해까지 승승장구하던 집값이 올 들어 줄곧 하락세다. 올 들어 5월까지 0.91% 떨어지며 전국에서 가장 많이 하락했다. 주택매매거래가 거의 ‘반토막’ 났다. 전셋값도 동반약세다.


다음은 가계부채 위험이다. 신규 분양 아파트의 중도금 대출인 집단대출 금액이 가계부채의 주를 이루는 주택담보대출액의 절반을 넘어섰다. 집단대출은 입주하면서 담보대출로 전환하는데 주택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연체율이 높아지며 부실해질 수 밖에 없다. 분양시장은 재고주택 시장과 달리 공급효과가 2년 반 정도의 공사기간이 지난 입주 무렵에 나타난다. 공급자도 소비자도 분양시장 열기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안장원 기자?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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