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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산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3호 29면

“여보, 제비가 우리 집에 둥지를 틀었어요!”


며칠 어딜 나갔다가 왔더니, 대문으로 들어서는 나에게 아내가 싱글벙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제비가 둥지를 튼 것이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우리 집은 오래된 한옥으로 잡초마저 뽑지 않고 두니까, 뱀이나 개구리·땅강아지 같은 동물들도 서식한다.


“그렇게 좋아요?”


“그럼요. 우리 집이 생명의 산실이 되었는데….”


나는 아내의 입에서 나온 ‘생명의 산실’이란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구나. 살아 있는 생명들을 핍박하는 시대에 우리 집이 생명을 보듬는 공간이 되었구나. 그날 나는 제비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어떤 페친이 우리 집을 ‘제비 산부인과’라 하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숨 붙여 사는 공간이 희귀해지는 생명을 살린다고 생각하니, 이런 보람을 안겨준 제비들이 더 귀하게 여겨졌다.


해월 최시형은 “천지만물 가운데 하느님을 모시지 않은 존재가 없다”(天地萬物 莫非侍天主也)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풀꽃 한 송이, 벌레 한 마리조차 하느님처럼 공경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천민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당장 돈이 안 되는 생명들의 생멸(生滅)에는 지극히 무관심하다. 내가 사는 마을만 해도 벼를 키우는 논에는 우렁이를 넣어 유기농을 하지만, 밭에는 숱한 농약을 뿌려댄다. 나이 드신 농사꾼들이라 제초제 같은 농약이 얼마나 땅을 오염시키고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지 모르는 듯하다.


이런 무지는 나이 든 농사꾼뿐 아니라 그런 농산물을 소비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마트에서 우리가 사다 먹는 식품들이 대부분 유전자변형농산물(GMO)로 만든 것인데, 많은 이들이 그것의 유해성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 GMO 농작물이 쌀이나 고추·감자 같은 우리의 주식까지 휩쓸 기세다. 맘몬의 우상이 우리의 먹거리까지 무섭게 잠식하고 있는 형국이다. 먹거리의 오염은 인류를 숱한 질병의 고통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했다. 그러나 오늘날 오염된 먹거리를 상식하는 젊은이들 중에는 생육하고 번성하기는커녕 불임으로 고통 받고, 그들을 통해 생명을 얻은 아이들 가운데는 기형으로 태어나는 불행이 비일비재하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유전자를 제멋대로 변형하고 조작하는 행위는 조물주의 자리를 넘보는 인간의 교만이 아닐까. 맘몬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는 이런 반성조차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며칠 후, 우리 집 처마를 쳐다보았더니, 제비 둥우리에 어린 제비새끼들 모습이 보였다. 이른 무더위 속에도 어미 제비는 성스런 임무를 다한 것이다. 어미·애비인 듯싶은 제비가 먹이를 물어와 연실 제비새끼들 입에 먹이를 물려주고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제비새끼들은 어미가 물려주는 먹이를, 노란 주둥이를 딱딱 벌이며 받아먹고 있었다.


고진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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