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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기준 5조 → 10조원 이랜드·카카오 등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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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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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와 셀트리온이 두 달 만에 ‘대기업 감투’를 벗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9일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자산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높였다. 바뀐 규정은 9월께 시행된다. 국회를 거칠 필요 없이 공정위가 시행령만 고치면 되기 때문이다. 2008년 7월(자산 2조원→5조원) 이후 8년 만의 개정이다.

모든 공기업도 대상서 제외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유지
“경쟁 외국 기업 비해 열세”
업계 추가 규제완화 기대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지난 8년간 국내총생산(GDP)은 49.4%, 대기업집단 자산 합계는 101.3%, 대기업집단 평균 자산은 144.6% 증가했다”며 “각 대기업집단 규모와 상관없이 동일 수준의 규제가 일괄 적용되면서 일부 하위 그룹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기준을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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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5조원 기준에 턱걸이해 올 4월 새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던 카카오와 셀트리온은 숨통이 틔었다. 카카오 관계자는 “계열사 대부분이 정보기술(IT) 벤처인데도 대기업 규제 때문에 신규 사업 진출이나 정부 과제 수행을 못할 뻔했다”며 “이번 규제 완화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카카오가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를 설립하는 데 장애가 되는 걸림돌 하나도 사라졌다. 대기업집단은 인터넷은행 지분을 4% 이상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제(관련 은행법 개정안 20대 국회 제출 예정)에서 벗어난다. 셀트리온 관계자 역시 “바이오 제약 기업은 연구개발(R&D)이 중요한데 이번 조치로 R&D 세액 공제 한도가 원래대로 늘 것으로 예상돼 다행스럽다”고 전했다.

지주회사 자산 요건도 1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올라갔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3년 주기로 재검토한다. 공기업은 자산 규모와 상관없이 대기업집단 지정·규제 대상에서 아예 빠진다.

10조원 이상 자산을 가진 민간 그룹만 공정거래법에 따라 ▶상호·순환 출자 금지 ▶채무보증 제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같은 사전 규제를 받는다. 대상 대기업집단은 65개에서 28개로 절반 이상 줄어든다. 조세·고용·금융 등 38개 다른 법령도 자동으로 개정되는 효과가 난다.

공정위는 대신 5조~10조원 사이 자산을 보유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한 일감 몰아주기(총수 사익 편취) 금지, 공시 의무 같은 사후 규제는 유지하기로 했다. 이런 ‘차등 규제’는 국회에서 법을 바꿔야 시행할 수 있다.

바뀐 규정에 모두 환호를 보내는 건 아니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지금 상황이면 내년에 다시 대기업집단에 들어가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하림의 자산은 9조9100억원이다. 김 회장은 두 달 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대기업 규제는 경쟁 외국 기업에만 좋은 일”이란 의견을 밝혔다.

이번 기준 변경은 4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한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여론 수렴 절차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김현종 산업연구실장은 “5조원 이상 기업에 대해선 일감 몰아주기 등 제한을 유지하기로 했는데 그럼 자산 1조~5조원 기업에선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느냐”며 “명확한 근거 없이 규제 체계만 복잡해질 공산이 크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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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공기업 특혜’ 논란도 인다. 공정위는 공기업을 대기업집단 지정 대상에서 빼면서 총수(오너)가 없고 공공기관 공시 시스템(알리오)이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공정위는 2002년 대기업집단으로 공기업을 새로 규제하기 시작할 때는 “공기업의 부당 내부 거래가 극심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공시 의무 규제 기준을 현행(자산 5조원)으로 유지하며 대상에서 공기업집단만 제외하는 것은 규제 완화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경제력 집중 심화와 중소기업·소상공인 골목상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논평을 냈다.

◆대기업집단=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는 대기업집단의 정확한 명칭은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정 기준에 따라 매년 4월 대기업집단을 지정해 발표한다. 여기에 속하면 공정위로부터 특별 감시를 받는다. 계열사 간 상호출자 제한은 물론 순환출자·채무보증 금지 등 규제 대상이 된다. 어기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처벌 받는다.

세종=조현숙 기자, 박성민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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