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없어 불량식품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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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식품위생 행정을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해 현행 식품위생관계법규를 전면적으로 개정하겠다고 29일 국회에서 밝혔다.
현행의 식품위생관련법규는 지나치게 산만하고 복잡해 관리담당자나 제조업자·소비자들이 법규를 인식하기가 어렵고, 또 이들 법규를 위반했을때의 벌칙이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규가 여러갈래로 나누어지고 또 비슷한 내용이 중복돼 있으면 얼핏 보아서는 여러 기관에서의 교우점검(크로스체크)이 가능하고 단속의 손길이 잦아 더욱 엄격하고 정밀한 관리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잘만 하면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같은 현실에서는 이것이 역작용을 일으켜 각 법규마다 기준이 다르고 같은 내용이 중복되기도 하여 영업자들은 이중, 삼중으로 불필요한 간섭을 받고 있으며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비난의 소리가 나온다.
뿐만아니라 담당 부서가 분산되는 바람에 관리와 지도단속을 서로 타기관에 미루고 책임을 전가시키는 허점 또한 없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여러갈래로 산재해 있는 식품위생관계 법규를 통폐합하여 정비하는 일은 올바르고 체계있는 관리와 단속을 위해 시급한 선행조건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법이 있어도 그 시행이 부실하고 태만하면 그 법은 있으나마나한 죽은 법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금의 식품위생법도 법과 시행영·시행규칙등을 보면 식품제조업소는 각 식품별로 시설기준이 분명히 나와있고 표시기준과 대상이 규정돼 있으며 반드시 위생시설을 갖추게 돼 있다. 업소마다 식품위생관리인을 두고 품질의 관리와 해당기관에 대한 보고업무가 의무화돼 있으며 감시원은 수시로 품질과 시설을 검사하여 이를 위반한 업소나 제품에는 제재를 가하도록 엄연히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량간장, 가짜 참기름, 가짜 식용유를 비롯한 각종 부정·불량식품이 범람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두말할 여지도 없이 법자체가 죽어 있기 때문이다. 법규를 발동하여 불량식품을 단속해야할 부서나 관리들이 일을 안하고 있다고 밖에 달리 이유를 밝힐 도리가 없다. 지난 82년말 현재 1만4천6백21개소의 식품제조 가공업소가 있는데 그해 한햇동안 이들 업소에서 제품을 수거하여 위생검사를 실시한 건수는 2만2천6백24건에 불과하다.
1개 업소에서 1개제품만을 만든다면 1년에 평균 1·7건, 그러니까 1년에 두번도 검사를 안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1개업소에서 최소한 5개 종류의 제품을 만들어 낸다고 가정하면 3년에 한번이 될지 말지 한다.
물론 인력과 예산이 모자란다는 핑계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지도와 단속인력을 늘리고 검사기술을 향상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 문제만은 아니다. 부족한 인력과 기술이나마 그들이 사심없이 엄정한 자세로 단속에 임한다면 식품환경의 개선은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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