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식량지원은 제재와 무관…북 관리하며 생색낼 다목적 카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중 기간에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다뤄진 식량 지원 문제는 양국이 처한 상황 논리가 만들어낸 절충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 “인도적 지원이 방점”
미·일, 중국 압박하는 상황에서
중국도 북한과 관계 개선 필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일본을 방문해 대중국 압박 외교전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중이 서로 불편한 관계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는 시점에서 양국 이해가 맞아떨어진 카드가 식량 지원이었다는 얘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일 이수용을 만나 채찍과 당근으로 이해될 만한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 시 주석은 우선 “북·중 관계를 수호하고 돈독히 발전시키길 바란다”며 냉각된 양국 관계의 개선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일관되고 명확한 입장”이란 표현을 썼다.

정부 당국자는 “이는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안정 유지, 대화·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란 기존 3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핵 불용’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 본다”고 풀이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중국이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한다면 대북제재와는 무관하게 인도주의 차원의 접근이라는 데 방점을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입장에선 북한을 영향권에 두고 관리하면서 생색도 낼 수 있는 다목적 카드가 식량 지원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용의 방중을 통해 대북제재 영역 바깥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경제협력이 깊이 있게 논의됐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강대 김영수(정치외교학) 교수는 “이수용이 상당한 규모의 대표단을 이끌고 방문한 것으로 봐선 광범위한 분야의 경제협력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 읽힌다”고 말했다. 또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의 집단 탈출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탈북 도미노가 일어나지 않도록 협조해줄 것을 비공개로 요청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성균관대 중국연구소 이희옥 소장은 “식량 등 인도적 지원이나 경협 사안은 대북제재의 사각지대라서 중국으로서도 거부감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① “북 대표단, 중국에 식량 100만t 요청”
② 식량원조 접근했지만…시진핑·이수용 만남은 20분뿐



이날 이수용과 시 주석 간 면담이 약 20분에 그쳤다는 점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방중이나 양국 정상회담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되긴 어려웠을 거란 분석이 많다. 정부 당국자는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이수용의 방중이 (북·중 관계에서) 획기적인 국면 변화를 가져오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핵화 문제에서 북한의 입장 변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계 복원의 모멘텀이 마련된 건 분명해 보인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학술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하고 1일 돌아온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이수용 방중 일행을 리진쥔(李進軍) 주북한 중국대사가 수행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중국이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라며 “이번 방중으로 북한과 중국의 당 대 당 관계 복원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구·전수진·유지혜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