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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 위협하는 국제 원자재 가격 들여다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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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중국 북부지방에 있는 철강 공장 앞을 한 노동자가 지나가고 있다.[블룸버그 제공]

최근 들어 국제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다시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정책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원유와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 경제는 이들 가격의 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던 국내경제에 찬물을 끼얹었던 악몽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하락세를 보였으나, 2002년을 기점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주요 원자재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 중에 잠시 하락세로 반전되었으나 올해 들어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국제 원자재가격의 척도 중 하나인 CRB 상품선물지수는 2003~2004년에 걸쳐 2년 연속 두 자리 수의 상승률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이미 5.7%나 추가 상승하면서 80년대 초반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비에너지 부문에서는 비철금속의 가격 상승세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비철금속 가운데서는 아연이 23%, 구리가 12%나 각각 추가 상승함으로써 전반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또 고철 가격은 1% 수준의 미미한 상승에 그치고 있으나, 나프타 가격은 유가 급등세의 영향으로 약 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대조를 보이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국내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원자재가격 상승분은 고스란히 생산원가 상승으로 반영된다. 비용이 높아지면 제품가격이 올라 물가가 상승하면서 생산량이 줄어드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또 국제 원자재 가격이 세계경제의 성장을 위축시키면 우리나라의 수출은 그만큼 타격을 받게 된다.

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은 공급에 비하여 수요가 턱없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세계경제는 5% 수준의 전례 없는 고성장을 지속해 전 세계적으로 원자재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세계 제조업의 중심기지로 부상한 중국경제는 최근 수년간 10%에 가까운 폭발적인 과열경기를 나타내고 있다. 원유나 원자재 투입 비중이 큰 산업구조를 가진 중국이 고성장을 지속함에 따라 원자재시장의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어 원자재 수급난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이전까지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중국의 위상은 철강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높지 않은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전 품목에 걸쳐 급속히 높아졌다. 중국은 이미 철강.구리. 니켈 등 금속 원자재에서 미국의 소비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90년대에 걸쳐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공급능력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2000년 이후 예상치 못한 중국의 수요 증대가 가격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상품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원자재들은 미 달러화로 결제되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의 변동은 국제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 원자재 수출국들은 자국 통화로 환산한 수출대금이 줄어들게 되므로 채산성을 보전하기 위해 수출가격을 인상하고, 반대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수출가격을 인하하게 된다. 2002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달러화 약세는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국제금리의 변동은 금융시장과 상품시장 간의 자금 이동을 변화시켜 국제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준다. 2002년 이후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여 왔고, 채권시장도 매력을 상실하면서 국제 유동자금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원자재 시장으로 유입되어 왔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투기성 유동자금이 원자재 상품시장으로 몰리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유가의 상승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국제유가의 상승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영향은 주로 비용상승에 의해 발생된다. 원자재 가격바스켓을 구성하고 있는 유화제품, 철강 및 비철금속 등은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원료비나 생산비가 늘어나 동반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밖에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원자재의 상대가격이 낮아져 원자재 수출국들은 원자재 가격을 인상하게 된다.

국내에 수입되는 주요 산업용 원자재(원유 및 농산물 제외)의 가격 변동에는 중국 요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고성장에 따른 원자재 수요 압력은 2002년 이후 점차 확대되어 최근에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30%가 넘는 기여를 하고 있다. 2002년 중반부터 국제 원자재 가격에 대한 영향이 커지기 시작한 국제유가의 기여도는 30%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미 달러화 약세기조는 2002년 중반 이후부터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 크게 기여했으나, 최근에는 그 영향력이 다소 둔화되고 있다.

국제금리는 2001년 중반부터 지속적인 가격상승 요인으로 작용했으나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 등에 의해 영향력이 10% 수준으로 낮아졌다.

지난해부터 지속되고 있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은 중국의 고성장, 달러화 약세, 세계적인 저금리 등에 따른 정상수요와 투기수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현상이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달러화 약세 기조와 중국 등 신흥공업국의 수요 증대로 인해 원자재 가격의 상승 압력이 여전히 클 것이기 때문에 투기 수요의 진정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안정된다 해도 공급이 충분히 늘어날 때까지는 상당 폭으로 상승한 가격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요 압력으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생산능력의 확대로 이어져 일정한 조정기간을 거친 뒤 균형 수준으로 회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조적인 초과수요에 의해 형성된 가격이 3~4년 정도 지속됐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올해나 내년에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윤우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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