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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한국경제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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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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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산업부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긍정 바이러스 유포자다. 적어도 자국 경제에서만큼은 그렇다. 세 개의 화살(통화완화·재정확대·구조개혁)을 무기로 ‘잃어버린 20년’에 지친 일본인에게 ‘할 수 있다’는 긍정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그런 아베가 지난주 G7 정상회담에선 비관론자로 돌변했다."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만큼이나 나쁘다”며 각국 정상에게 재정·통화 정책의 공조를 호소했다. 아베의 변신은 의도됐다. 당초 아베는 내년 4월 두 번째 소비세 인상을 단행하기로 약속했다. 세금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경제를 살려놓겠다는 게 전제다. 하지만 그 정도로 경제가 좋아지진 않았다. 비관론은 그래서 나왔다. 세계 경제 상황을 비관적으로 전제함으로써 소득세 인상 연기의 명분을 찾은 것이다.

경제는 심리, 죽는다 하면 진짜 죽어
3·4월 오르던 소비지표 하향 반전
지금 경제, 외환·금융위기 때와 달라
비관론 확대재생산, 발등 찍을 수도

아베는 비관론 활용의 좋은 예다. 비관을 통해 긍정의 반전을 이뤘다. 자기반성을 통해 한 단계 진보할 때 비관론은 힘을 가진다. 반대로 근거 없는 자기 비하나 냉소는 비관론 활용의 나쁜 사례다. 모두를 지치게 할 뿐이다. 지금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딱 그 모양새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죽겠다, 죽겠다”라고 자꾸 되뇌면 진짜 죽는다. 구조조정의 첫 술도 안 떴는데 이런 고성에 주눅 들어 3, 4월 상승세를 타던 소비자심리지수가 하향 반전한 게 그 예다.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면 경제가 나쁜 것은 아닌데 위기를 과장했단 말인가”라고. 그렇다. 나는 ‘일정 부분’ 위기론은 과장됐다고 본다.

먼저 산업 구조조정부터 보자. 조선업의 경우 문제가 되는 건 사실상 정부 소유나 다름없는 대우조선해양이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도 어렵긴 하지만 대우조선에 비하면 감기몸살 앓고 있는 정도다. 중소형 조선소도 문제되고 있지만 사실상 이들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수년간 진행돼왔다. 구조조정에 따른 충격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얘기다. 해운업의 경우 조선업보다 후방산업이 크지 않아 구조조정에 따른 우휴증도 조선업보다 덜하다.

지난 4월 정부가 조선·해운과 함께 5대 취약업종이라며 구조조정 추진 방향을 밝혔던 건설·철강·석유화학도 세계적인 공급과잉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지만 당장 나라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업황이 심각하지 않다. 결국 곪을 대로 곪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을 신속하게 수술하면 위급한 상황은 넘긴다는 얘기다. 지금의 상황을 1997년 외환위기, 2008년의 금융위기와 비교해가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경제위기의 가늠자로 불리는 환율,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게 이를 증명한다. 비관론의 확대 재생산이 결국 우리 발등을 찍을 수도 있다. 총선 이후 한국 언론의 비관론을 퍼다 날으는 해외 언론이 부쩍 늘어난 게 이를 증명한다. 우리의 위기는 그들에겐 기회다.

또 다른 한국경제 비관론의 테마는 산업구조개혁이다. 이미 경쟁국들은 산업혁명 4.0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국내는 2.0 또는 3.0 시대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결국 중국·인도 등 신흥국에 시장을 다 내주고 우리는 침몰할 것이라는 게 위기론의 줄거리다. 우리에겐 왜 구글·페이스북·아마존 같은 기업이 없냐며 낙담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이런 기업들은 미국 외 다른 나라에도 없다. 물론 우리가 산업구조 개편을 잘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미 많은 기회를 놓쳤다. 더 미루면 정말 몰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창업 열기는 어느 나라보다 뜨겁고,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도 꽤 있다. 포스코 같은 전통의 굴뚝산업도 IT를 접목한 스마트화를 통해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잘못하는 걸 감춰서는 안된다. 잘 한다고 미리 샴페인부터 터트려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실제 이상으로 우리를 깎아내리며 자학할 이유도 없다. 경제는 심리인 까닭이다.

하지만 차가워진 심리를 따뜻하게 반전시키려면 계기와 자극이 필요하다. 아베노믹스가 좋은 예다.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두고 여러 평가가 있지만 일본이 달라졌다는 건 공통된 평가다. 대중들의 심리를 바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준현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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