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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몸짓’과 ‘동서양 조화’, 두 심청의 춤 배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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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30면

국립무용단 ‘심청’

2016년, 심청이 춤을 춘다면 어떤 춤을 출까. 영화·연극·오페라·창극 등 온갖 예술장르로 만나온 그녀를 곧 ‘심청 vs 심청’의 흥미로운 춤 대결로 만난다.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 신작 ‘심청’(6월2~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발레 ‘심청’(6월10~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다.


‘심청’이라 뻔할 것 같지만 올해 두 공연은 나름 그 의미가 각별하다.은 한국 창작춤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매자 안무로, 판소리와 한국춤을 접목시킨 작품이다. 2001년 LG아트센터 초연 이래 안숙선·박애리·이자람 등과 협업하며 깊이를 더해오다 이번에 국립 레퍼토리로 선정돼 새롭게 리모델링한 버전을 선보인다.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은 독일 연출가 루카스 헴레프를 드라마투르그로 기용하는 등 해외 관객을 겨냥해 작품을 다듬었다. “그동안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을 비롯해 해외공연을 많이 해왔는데,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인 판소리 완창이 서양인에게는 지루할 수 있겠더라. 가능한 압축하되 판소리의 특징적 요소를 그들도 직관적으로 느끼도록 신경썼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이를 위해 원일 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기용해 원작의 판소리 형식에 음악적 변화를 가미하고, 시각적으로도 모던함을 꾀했다. 김 이사장이 관전 포인트로 꼽은 것은 3장 ‘범피중류(汎彼中流)’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순간을 더블 캐스팅된 장윤나와 엄은진, 두 심청이 함께 2인무로 표현하는 대목이다.


“15년 전에는 내가 직접 심청을 췄는데, 이제 심청이 젊어져서 안무가 더 역동적이 됐죠. 배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이 원래 중요한데, 연습을 위해 둘을 같이 세워봤더니 체구도 성격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 그림자처럼 어우러지는 게 그 자체로 명장면이 됐어요. 둘의 대조로 죽음을 앞둔 갈등의 심정을 강하게 표현하게 됐죠.”


그는 ‘국립판 심청’만의 매력으로 ‘판소리의 힘’과 함께 ‘한국인의 몸짓’을 내세웠다. “우리 음악과 의식, 연극적인 모든 요소가 담긴 판소리에서 너무나 깊은 한국의 전통을 느낄 수 있죠. 그런데 내 테크닉은 현대적이거든요. 이 시대 한국인의 몸짓으로 우리가 가진 전통을 표현하는 게 제 ‘심청’입니다.”

유니버설발레단 ‘심청’

한편 발레 ‘심청’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초대 예술감독 에드리언 댈러스 안무, 지난 4월 작고한 음악평론가 박용구 선생의 대본으로 탄생한 최초의 창작 발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유니버설발레단 월드투어’의 메인 레퍼토리로 일본·대만·싱가포르·미국·캐나다·러시아·프랑스와 중동의 오만에까지 진출한 ‘발레 한류’의 원조다.


30년간 갈고 닦은 만큼 큰 변화 없이 30주년의 의미 살리기에 주력한다. 초대 심청인 문훈숙 단장을 비롯해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전 수석무용수 박선희·전은선·강예나 등 역대 심청 5명이 카메오로 출연해 서곡에서 회상 장면을 연기하고, 초대 심봉사 서양범 서울예대 교수 등 3명의 역대 심봉사도 가세한다. 문 단장은 “역대 심청, 심봉사들과 함께하면 뜻 깊지 않을까 싶어서 연락했는데 다행히 너무들 좋아하시더라”며 뿌듯해 했다. “국내에 계신 분은 모두 흔쾌히 나와 주시기로 했죠. 저는 2010년에 한 번 했었는데, 비중은 작지만 아주 상징적인 역할이라 엄청 긴장되더군요. 하지만 해설하는 것보단 쉬웠어요. 표현에 있어 무언의 움직임이 훨씬 강렬하단 걸 새삼 느꼈죠.”


‘국립판 심청’에 판소리가 있다면 ‘유니버설판 심청’에는 감미로운 음악이 있다. 미국 작곡가 케빈 바버 픽카드가 ‘심청’을 위해 맞춤 작곡한 음악으로, 관객들이 음반 발매를 원할 정도로 중독성 있는 유려한 멜로디가 감동을 더한다. 막마다 남자 주역이 바뀌는 것도 특징. 1·2·3막에 각각 선장과 용왕, 임금 등 3명의 주역급 남자 무용수가 차례로 등장해 풍부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대신 심청이 세 남자를 “진주 꿰듯이” 끌고 가야하는 만큼 역할이 막중하다는 것이 문 단장의 말이다.


하지만 ‘발레 심청’만의 매력은 무엇보다 동서양의 조화다. 2012년 러시아 공연 당시 유력 일간지 코메르상트가 “우리는 이 공연을 통해 동서양 문화의 훌륭한 조화를 목격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한국의 고전을 발레에 입히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간다고들 하는데, 보신 분들은 우리 전통 의상과 클래식 발레 동작이 아주 조화롭게 융합됐다며 놀라워하시죠. 지금도 창작이 어려운데, 86아시안게임 때 초연을 했으니 얼마나 앞서간 작품인가요. 천재적인 안무는 아니라도 열악한 상황에서 한국문화와 발레를 조화시켜 창작발레를 만들어낸 비전과 정성 때문에 더 정이 가는 게 우리 ‘심청’입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사진 국립무용단·유니버설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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