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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400㎏ 거대 상어 천적은 기생충…신출귀몰한 작은 생명체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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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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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서민 지음, 을유문화사
376쪽, 1만6000원

‘기생충’이란 말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다른 생물의 몸에 기생해 양분을 빼앗아서 연명하는 생존 양식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국대 의대 교수로 기생충을 직접 연구하는 지은이의 생각은 다르다. 기생충은 인류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고 설명한다.

예로 북극권에는 길이 3~5m에 무게가 400kg이 넘는 그란란드 상어가 산다. 몇 년 전 포획된 상어의 배를 갈라봤더니 순록과 북금곰이 나왔다고 한다. 이 무시무시한 포식자에게도 천적이 있다. 오마토코이타 엘롱가타라는 기생충이다. 갈고리처럼 생긴 몸의 한쪽 끝을 상어의 눈에 박아놓고 야금야금 눈알을 파먹으면서 살아간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기묘한 방식으로 삶을 유지한다. 기생충의 생존술이 인류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기생충학자들은 구충의 생리를 연구하다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 그리고 피를 굳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을 발견했다. 제약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의약품을 개발 중이다. 구충에는 자신의 몸속에 기생충을 키운 집념 어린 학자의 사연이 숨어있다.

독일 기생충학자 아르투어 로스는 1904년 구충 유충이 든 용액을 쏟은 자신의 팔이 가렵고 따가워오자 무릎을 쳤다. 필시 유충이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고 의심한 그는 두 달 동안 끈질기게 대변 검사를 계속한 끝에 마침내 유충을 발견했다. 구충은 인간이 그 알에 노출된 식품을 먹어서가 아니라 흙속 유충이 피부를 뚫고 몸에 들어와 감염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구충은 가난하고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나라를 중심으로 지금도 전 세계에서 5억~7억 명의 감염자가 있다고 한다. 돈이 없어 신발을 사지 못하고 맨발로 밭일을 하는 저개발국의 농부와 그 가족들은 구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사실 기생충은 없는 데가 없다. 1급수에서만 산다는 은어도 2011년 조사 결과 동해안 하천에선 60.7%가, 남해안 하천에선 99.3%가 각각 요코가와 흡충에 감염돼 있었다. 심한 복통과 설사를 유발하는 기생충이다. 물이 아무리 맑아도 은어는 날로 먹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게 지은이의 충고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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