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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대입「점수지상」서 벗어나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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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해마다 우리는 홍역을 치르며 연말연시를 보낸다. 줄잡아 인구의 10%가 이른바 「대입전쟁」에 직·간접으로, 자의든 타의든 「참전」하지 않을수 없게된다.
원서를 든 수험생은 경쟁자가 적어보이는 한산한 창구를 찾느라 기웃거리고 워키토키에 콜택시까지 동원한 가족들로 원서접수창구 주변은 북새통을 이루게된다. 「눈치작전」에 「도박지원」, 「배짱합격」이 난무하고 포커의 하이로 게임이란 평판까지 듣는「대입」을 우리는 벌써 몇해째나 치르고 있다.
김종서교수 (서울대)는 지원 자체가 당락을 결정해버리는 획일적인 현행 선시험-후지원제가 혼란을 가중시키는 주범이라 단언한다.
그는 거국적으로 치러지는 교육행사가 엄청난 인구를 동원하면서 「눈치」니 「도박」이니 또는「배짱」이니 하는 가장 비교육적 행사로 끝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대입풍경이라며 내년 입시는 선지원과 선시험 절충형으로 치러져 혼란은 다소 완화되겠지만 그렇다고 원천적인 경쟁의 열기가 사라질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지난 40년간 선시험-선지원, 단독-공동을 8번이나 바꿔봤지만 해가 지날수록 입학경쟁의 치열도는 높아만 왔다. 이제까지 여유를 보여온 영·불·독등 유럽에서조차 재수생이 생길 정도가 됐다.

<40년간 악순환 계속>
미·일처럼 대학이 일찌기 대중화된 나라에서는 물론이지만 엘리트만을 뽑던 유럽대학들도 대중화 추세를 거역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졸업후 취직기회의 많고 적음에 따른 대학의 피라미드현상이 학부별로 이루어지고 있기때문이라고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의 「대학입학정책」보고서는 진단했다.
이미 4년제대학에만 대상연령인구의 21.6%가 취학하고있는 우리의 대학교육은 대중화단계에와 있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아 취학률은 더욱 늘어날수밖에 없고, 실제로 전문대·방송통신대등을 포함하면 대상인구의 50%를 육박, 미·일에 이어 보편화단계를 눈앞에 두고있다.
미버클리대 「마틴·트로」교수는 대학 (고등교육)을 3단계로 나누고 단계별로 어쩔수없이 달라지는 교육활동의 성격과 학생선발의 요건을 설명했다. 취학률 15%이하를 엘리트 단계로 정의, 대학사회는 이 단계에서 동질성을 유지하게된다.
이 단계를 넘게되면 중등교육후 곧바로 입학하지 않는 학생과 중도 탈락률이 많아지고, 대학도 다양한 수준을 갖게되며, 취학률이 50%를 넘게되면 극도의 다양성을 갖게되는 보편화 단계가 된다.
현행대입제도가 계속 삐꺽거리는 것은 바로 이같은 현실을 외면하고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대학마다 그 수준이 다르고, 대학지원자의 자질이 다양한데도 획일적인 기준으로 모든 대학입학자를 선발토록하고 있으니 소리가 시끄러울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비교하자면 현실은 미국형인데 선발제도는 유럽형이다. 유럽조차도 지원자가 몰리기 시작하는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프랑스의 그랑제콜, 독일의 의학부 등에서는 대학 나름의 선발제도를 마련하고 있고 미국은 이미 대학마다 특유의 방안이 정착돼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경우 대학에 선발권을 완전히 준 일이 없지않았으나 그때마다 대학이 그 권한을 바르게 행사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다.
명문대학에서조차 「입시부정」으로 말썽이 일어나 일반의 신뢰를 떨어뜨렸고, 이웃 일본을 비롯, 외국에서 써먹은 문제를 표절하면서 수험생들을 골탕먹여 고교교육과정의 정상운영을 망쳐놓고 있다는 성토를 받기도 했다.
대학입시제도는 입학적격자 선발기능과 고교교육정상화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한다. 또 이에는 신뢰성과 타당성이 동시에 보장돼야한다.
선발과정에서 선발하는 측(대학)이 선발당하는 측 (수험생)으로부터 의심받지 않게 하는것은 기술적인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채점과 평가에 객관적 기준이 확보되면 신뢰는 받을수있다. 그러나 아무리 객관성이 있더라도 평가척도 자체에 타당성이 없으면 적격자 선발은 불가능해진다. 돌맹이속의 순금덩이를 찾아내는데 줄자를 대고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측정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영철박사 (한국교육개발원)는 대입제도가 타당성을 갖기위해서는 3가지 기능을 만족하게 수행할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학입학 적격자 선발에 타당한 제도어야 하고, 고교교육의 방향을 바르게 설정할수 있어야하며, 건전하고 발전적인 사회풍토조성기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관 더욱 다양화>
누구를 누가 어떻게 선발해야 이같은 기준에 적합한 기능을 다할수 있을까. 대중화·보편화로 치닫는 대학교육의 발전추세에 비추어서도 그렇지만, 가치관의 다양화가 더욱 두드러지게될 21세기 전망에 비추어 대학별로 다양한 선발제도가 적용될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같은 예를 미국의 대입제도, 특히 하버드대의 선발방식에서 보고 있다. 하버드의 학생선발제도는 한마디로 「우수한 학력이 합격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며, 선발에는 성격·자질·특수능력이 중시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자질에는 창의력·감수성·용기·충성심·열의·활력·온정등이포함된다.
단순한 「점수벌레」는 합격선에서 제외된다. 자발적인 흥미로 공부를 했는가, 지나치게 점수를 의식하거나 부모의 압력에 못이겨 공부를 하지는 않았는가등 독자적인 조사서를 고교에 보내 회답을 받는다. 대학이 실시하는 학력시험은 없다.
실제로 객관성보다는 타당성을 선발원칙으로하는 하버드대는 학력보다 인간으로서의 발전가능성이나 다양한 능력을 크게 반영한다.
최근의 한 통계는 고교성적 석차기준으로 상위34%이내인 성적불량자가 전체합격자의 10%였고, 석차1%이내의 지원자중 불합격자가 전체불합격자의 10%였다. 대학입학위원회가 실시하는 적성검사(SAT)성적에서도 마찬가지. 입학생 1천2백2명중에는 5백80점(8백점만점)이하의 저득점자가 합격자의 10%나 됐으며 반면에 7백74점이상의 고득점자가 전체불합격자 6천9백명의 10%나 됐다.
합격자 선발기준으로 학력을 중시하지않는 하버드대의 이같은 방침은 득점학력보다 잠재능력을 중시, 입학후 발전의 여지가 많은 인재를 뽑는 것이지 대학입시가 고교교육을 통한 학력경쟁의 골라인이 아니라는 기본철학에 바탕을 두고있다.

<입시교육을 무용화>
단적인 예가 학력만으로 선발했다면 「케네디」전대통령을 불합격시켜야 했고, 대통령이된 인재를 놓쳐야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케네디」의 고교성적은 1백12명중 64위였다.
하버드대는 이같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쇄도하는 지원자를 제쳐두고 전담부서를 두고 연중 미전국의 고교를 돌며 스카웃작전을 벌인다.
최고 명문의 이같은 입학전형방법은 고교에서의 대학입시준비교육을 무용으로 만들고 고교교육과정 운영을 정상화시켜 놓았다. 대학의 수준이 다양하고 사회의 가치관이 점점 다양해질뿐아니라 지원자 또한 출신지역이나 잠재능력이 다양해지는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박성수교수 (서울대)는 소개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우리의 대학별 논술고사는 점수일변도의 선발방식에 새로운 숨통을 터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학측에서의 활용여하에 따라 이는 지원자가운데 선발하고싶은 잠재능력의 소유자를 찾아낼수 있는 방법으로 발전될수도 있다고 박교수는 전망했다. 다만 현행학력고사나 고교내신의 능력측정 방법도1, 2점으로 우열을 가리는 점수절대주의를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지원자의 입학을 허용하고, 진급및 졸업관리를 엄격히 해야한다는 의견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졸업정원제가 실패로 돌아갔듯, 사회구조나 가치관이 받아들일수있는 태세를 갖추지않는한 제도의 혁신적인 개혁은 늘 벽에 부닥친다는것을 우리는 지난 40년동안 보았다.
결국은 대학의 자율에 맡겨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제도가 허용될때만 안정된 분위기에서 혼란없는 입시가 치러질 것이다. 타당성은 그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겠지만 우리사회의 특수성에 비추어 긍정성이나 신뢰성 또한 빠뜨릴수 없는 전제조건이 돼야한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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