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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빨리 변하지 않으면 실리콘밸리 하청업체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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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 라피 아밋 와튼스쿨 석좌교수
한국 스마트폰 훌륭하지만
돈 잘 벌어 들이는 건 구글
근본적 사업방식 바꿀 필요


한국의 대기업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안그러면 실리콘밸리의 폭스콘(대만 소재의 애플 하청업체)으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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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 아밋 와튼스쿨 석좌교수(왼쪽)는 2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콘퍼런스 홀에서 열린 ‘유니콘의 여정 : 비즈니스 모델 혁신 콘퍼런스’에서 “한국의 대기업도 파괴적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오상민 기자]

비즈니스 모델 혁신 전문가인 라피 아밋 미 펜실베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와튼스쿨) 석좌교수의 일갈이다. 산업 생태계가 급변하는 이때, 어영부영하며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에 집착하다간 시장의 선도권을 빼앗길 거란 경고다.

2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의 여정 : 비즈니스 모델 혁신 콘퍼런스’에 참석한 아밋 교수는 “한국과 일본 기업은 문화적으로 파괴적인 혁신에 유리하지 않다”며 “더 개방적인 태도로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아밋 교수와의 일문일답.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제품 혁신과 어떻게 다른가.
“제품 하나를 새롭게 만들어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사업 방식을 완전히 바꿔 수익을 내는 게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다. 네슬레를 예로 들자. 네스카페가 신제품을 내는 것은 제품의 혁신이다. 네스프레소라는 캡슐형 커피머신을 내놓고 계속해 캡슐을 팔기로 한 건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다. 고객이 먼저 사고 싶은 항공권의 가격을 제시하게 한 여행사 익스피디아, 휴대전화를 파는 걸 넘어 애플리케이션과 음악까지 팔기 시작한 애플이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한 사례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대개 기존 산업의 파괴를 야기한다. 한국 대기업은 기존 조직을 축소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혁신을 못하는 것 같다.
“기존 산업의 축소는 어차피 일어날 일이다. 미 GM이나 포드 같은 자동차 기업을 보라.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구글·애플과 함께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런 혁신을 미룬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온다는 건 확정적이다.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를 뿐이다. 선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지금의 대기업들은 실리콘밸리의 폭스콘이 된다. 폭스콘은 휴대전화를 정말 잘 만든다. 하지만 돈은 애플이 다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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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자들이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 오상민 기자]

스마트폰 시장에선 한국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잘 했다고 보나.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삼성과 LG의 스마트폰은 훌륭하다. 하지만 삼성의 스마트폰이 많이 팔릴수록 더 돈을 버는 건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제공하는) 구글이다. 삼성은 첨단 기기를 출시하는 데 성공했지만 근본적으로 사업 방식을 바꾼 건 아니다. 현대와 기아차도 마찬가지다. 모두 자동차를 잘 만든다. 하지만 그동안 해 온 방식을 잘 답습할 뿐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장의 패권을 쥐는 건 다른 문제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한국 대기업 문화가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과 일본은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 직원들은 매우 열심히 일하지만, 의사 결정을 상사에게 미룬다. 이런 문화에선 파괴적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 또 주목할 점은 개방성이다. 성공한 스타트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창업자 그룹이 다양한 문화에서 온 글로벌 팀이란 점이다. 한국 기업은 순혈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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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기업 경영에 순혈주의 없어
한국도 외국 임원 참여 폭 넓혀라

몇몇 중국 기업의 경영에도 관여하는 걸로 안다. 중국의 문화는 다른가.
“내가 이사로 있는 중국 회사 두 곳만 해도 순혈주의가 없다. 이사진이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돼 있다. 이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이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한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임원을 영입하려는 시도를 하는 건 알고 있다.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내 경험에 의해 조언하자면, 외국인 임원을 모양새(decoration)을 위해 영입해선 안 된다.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 떠나버릴 거다.”
한국에서도 유니콘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들이 많다. 조언을 해준다면.
“한국 스타트업 투자와 관련해 자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받은 인상은 한국 예비 창업자들이 모방에는 강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데는 익숙치 않다는 인상이었다. 또 하나, 비즈니스 모델은 계속 혁신돼야 한다. 시장을 관찰하고 이를 좋은 아이템으로 발전시켰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를 어떻게 다듬을지 늘 궁리하라.”

글=임미진 기자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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