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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던져진 물음표 싹싹 지우는 게 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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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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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제철학올림피아드가 열리는 벨기에 겐트에 도착해 시내 구경에 나선 김의영양(왼쪽)과 최정호군. 두 사람은 “세계 각국 친구들과 철학을 주제로 대화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호]

“철학이요? 세상에 던져진 물음표를 지워주는 지우개죠.”

철학올림피아드 금상 김의영·최정호
40개국 고교생 90여 명 치열한 경쟁
한 나라 2명 동시 금메달은 처음
최 “코리아중앙데일리로 생각 키워”

김의영(청심국제고 3학년)양과 최정호(서울국제학교 12학년)군은 “철학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지난 12~15일 벨기에서 열린 ‘국제철학올림피아드(IPO)’에서 나란히 금상을 받았다. 같은 나라의 대표로 나온 두 명 모두가 금메달을 받은 건 이 대회 사상 처음이다. 둘은 주어진 네 시간 동안 영어로 ‘철학 에세이’를 작성했다. 이번 대회엔 40개국의 고교생 90여 명이 참가했다.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의 gender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두 사람이 이번 대회에 주어진 네 개의 주제 중 선택한 주제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여성이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요지의 글로 금메달을 따냈다.

두 사람은 철학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 대신 김양은 초·중생 시절 판타지 소설, 청소년 소설 등을 영어 원서로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한다. 고교생이 되면서 독서의 범위는 자연스럽게 철학책으로 넓어졌다.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T.Z.래빈의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로 철학에 ‘입문’했다. 김양은 “철학과 문학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군은 신문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중앙일보의 영어신문인 ‘코리아중앙데일리’를 정기 구독하고 있다. 그는 “사회 이슈를 주제로 친구·선생님·부모님과 토론하곤 했다”며 “신문은 다양한 생각들을 이해하면서 나의 생각을 튼튼하게 만드는 훌륭한 도구”라고 말했다.

최군은 3년 동안 교내 영어신문의 리포터를 거쳐 에디터로 활동했다. ‘타인의 생각’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 그는 철학자들의 생각이 궁금해 관련 책을 읽었다고 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언을 남긴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사고의 고정 관념을 깨줬어요.” 최군은 논리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철학이 수학·과학과 같은 교과목 공부에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데카르트는 수학자이기도 했다.

김양의 꿈은 ‘소설 쓰는 철학교수’다. 그는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철학이 담긴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최군은 최근 미국 브라운대에 합격해 9월 입학을 앞두고 있다. 그는 “아직 전공을 확정하진 않았지만 철학이 평생 나를 지탱하는 근본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국제철학올림피아드(IPO)=1993년부터 매년 전세계 고교생을 대상으로 열리며 글쓰기로 철학적 사고력을 겨룬다. 영어·불어·독일어 중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철학 에세이를 작성한다. 한국은 2003년부터 참가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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