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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 20대 여성 투신사건…왜 못 막았나

중앙일보

입력

'31분.'

경기도 의왕시에서 지난 22일 오전 발생한 20대 여대생 투신사건의 첫 112신고부터 투신까지 시간이다. 31분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현장상황의 급박한 변화와 자살과 관련한 전문 상담인력 부재 등이 복합돼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24일 경찰에 따르면 첫 112신고는 22일 오전 5시 7분이다. A씨(21·사망)의 대학 동기생인 B씨가 경찰에 당황한 목소리로 "(현관문) 밖에 누군가 있다"며 자신의 위치를 '1단지'로 설명했다.

최초엔 주거침입 신고였다. 앞서 A씨는 서울·의왕에서 B씨 등과 술을 마신 후 신고시각으로부터 30분 전쯤 B씨의 집에 들어온 상태였다. 112종합상황실의 지령을 받은 의왕경찰서 부곡파출소 소속 C경위·D경장은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비슷한 시각 상황실로부터 '2단지'로 확인됐다는 지령을 다시 받았다. 직선거리로 250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지만 돌아 나와야 했고 도착하니 이번엔 동 주출입구 스크린도어가 가로 막았다.

C경위 등은 신고자 거주지 동호수로 호출 버튼을 눌렀지만 응답이 없었고 아파트 경비원이 오고 나서야 동 안으로의 진입이 가능했다. 신고자의 집 앞 현관문에 도착해 벨을 누른 시간은 이날 오전 5시19분. 첫 신고시각으로부터 12분이 흐른 뒤였다.

현관문이 열리자 A씨의 자살시도가 확인됐다. A씨가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 출동경찰관을 향해 "악령"이라고 소리쳤다. 경찰에서 파악한 그 전까지의 상황은 외부인의 침입시도였는데 현장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B씨는 난간에 오르는 A씨를 보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C경위 등은 '건물 옥상 등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는 경우'의 현장 매뉴얼에 따라 A씨에게 말을 걸지 않는 대신 B씨에게 안정을 시켜달라고 부탁한 후 휴대전화로 의왕서 상황실에 119출동을 요청했다. 매뉴얼은 자살기도자가 극도로 흥분상태인 상태인 만큼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무전기 사용도 금지다.

출동 경찰관은 매뉴얼을 따랐지만 당황한데다 술도 깨지 않은 상태인 B씨에게 A씨의 안정을 맡기게 됐다. 경찰 2명이 추가로 지원됐지만 자살의심 사건 대응 전문가가 아닌 일반 지구대 근무자였다. 야간이다 보니 자살의심자를 상담하는 전문인력의 협조는 구하지 못했다.

이 아파트 폐쇄회로(CC)TV상 119대원의 도착시간은 이날 오전 5시35분이다. 아파트 1층 앞이 화단이다 보니 에어매트 설치가 늦어졌고 그 사이 A씨는 떨어졌다. A씨는 군포의 한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경찰 관계자는 "불가피하게 B씨에게 A씨의 안정을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며 "(야간에는) 자살 상담 전문기관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고 말했다.

의왕=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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