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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문화계에 "강경의 격랑"| 최근 일련의 조치와 각부처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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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국문제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 조치가 잇달고 있다.
지난 6월29일 경찰의 9개대 진입수색이 있은 이래 김대중씨에 대한 조기사면불가통보, 학원백서의 발표, 삼민투수사중간발표, 법무장관의 돌연한 경질 등이 이어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신민당 단독국회에 불응한다는 강경입장과 강력한 호헌론 등이 제기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20일에는 다시 서울대총장의 전격적인 경질이 단행되고 「문화의 정치투쟁도구화」를 경계하는 이원홍 문공장관의 경주발언이 나오면서 이른바 「민중미술」전시회의 작품 강제철거가 이뤄졌다. 이 같은 일련의 정부 조치에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크게는 집권후반기의 전체적 정치구도에서 읽을 수 있고, 가까이는 학원· 노사· 정국 등의 여러 문제에서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법적· 정치적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시라고 해석된다. 일련의 강경조치와 관련한 각 부처의 움직임과 표정을 모아본다.
○…「자율」과「개방」을 내세우며 출범했던 노신영 총리도 최근 들어 「자율」과「방종」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소신표명과 함께 적극적 대처·능동적 자세를 강조.
노 총리는 7월4일 비경제분야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총선 후 사회전반적인 분위기가 계속 들떠있는 상태에서 학원이나 노사문제가 집단행동을 수반, 사회불안을 가속화시킬 우려가 있으며 이 같은 사태가 정치적으로 에스컬레이터 될 가능성을 분석하고 적극 대처하는 것만이 법질서를 확립하고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문교부는 미문화원 농성학생들의 재판거부소동이 있은 다음날인 지난16일 「자율화이후 학원소요백서」라는 2백77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발표, 학원사태에 대한 정부의「새로운 인식과 확고한 대응」을 강조.
이날 뒤따른 법무부장관 전격경질과 함께 학원사태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대처방침이 이를 통해 표현됐던 셈.
○…때를 같이해 박배근 치안본부장은 11일 긴급 소집된 전국시· 도· 경찰국장회의에서 『학원을 정부와 체제타도 목적의 폭력기지로 삼거나 정치투쟁장소로 삼는 등의 극렬행위에 대해서는 대학당국의 요청이 없더라도 경찰을 학원에 투입시켜 운동권 학생들을 학원에서 격리시켜라』 고 지시해 학원문제에 대한 강경방침을 분명히 했다.
○…법무부장관경질 3일 만인 19일 단행된 서울지검 이건개 공안부장의 전격 전보발령도 정부의 강경선회 바람을 뒷받침하는 조치로 검찰측은 받아들이고 있다.
서울지검공안부장은 법정소란으로 문제된 미문화원농성사건의 공소유지에 대한 실무책임자인 만큼 공안부장의 경질인사는 학생사건처리에 대한 정부당국의 강경한 입장을 반증한 것임이 입증된 셈.
○…법무장관의 전격 경질직후 검찰은 삼민투위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배후세력을 철저히 가려내 엄벌하겠다』 고 해 전례 없이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지금까지는 학생사건의 경우 행위자에 대해서만 처벌해왔고 거의 배후수사는 하지 않았었기 때문.
더우기 검찰은 그 동안 구속학생들에 대해 가급적 적용을 회피해왔던 국가보안법을 주모자급 13명에게 무더기로 적용했고 발표문에서도 『앞으로도 이러한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 단호히 대처할 방침』 이라고 밝힘으로써 전례 없이 강경한 입장을 뒷받침.
○…학원사태가 격렬화 되면서 무풍지대로만 알고있던 문화· 예술분야에도 정부의 강경책이 발동된 것은 지난5월 이른바 이념서적의 단속이 그 시초.
이어 민중미술에 대한 이원홍 문공장관의 강경발언이 나온 것이 20일. 예총대표자회 (경주) 에서 『일부 예술인이 예술을 투쟁 도구화한다』 는 이문공의 발언과 때를 같이해 경찰은 아랍문화회관에서 개최중인 민중미술전시회를 실력으로 중지시켰다.
민중미술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이미 오래된 것이지만 자칫 예술활동을 억압한다는 비판을 들을까봐 자제해온 것이 사실. 이문공의 강경발언 자체도 「민중미술」을 직접 지칭한 대목은 없을 정도로 신중을 기하고 있다.
또 예총대회조차 당초에는 예총지원계획만 발표한다는 소문이었으나 결국 시국의 급박한 사태와 궤를 같이 하면서 강경발언이 나오게된 것.
결국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와 현실적인 단속이 어떻게 풀려나갈지 귀추가 주목되지만 어쨌든 이장관이 이날 「극히 일부」 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그들 문인· 예술인들이「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란 어떠한 시대인가 하는 시대성격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이 앞으로의 문화· 예술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에 변화가 있음을 암시한 것은 틀림없다.
○…미문화원농성 구속학생들의 처벌문제가 대학측에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지난16일 하오3시30분쯤 손제석 문교부장관이 서울대 이현재총장을 장관실로 불러 처벌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부터.
이날 손장관은 이총장에게 미문화원농성 구속학생들의 재판거부사태로 빚어진 정부안의 강경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관련학생들의 처벌을 강력히 촉구했다는 것.
손장관은 특히 이 사건과 관련, 같은 날 취해진 김석휘 법무부장관의 전격경질배경을 설명하고 재판을 맡은 검찰당국의 최고책임자가 문책인사를 당했는데 학생지도를 맡고있는 학교측이 원천적인 책임이 있음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무책임한 자세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문교부의 입장을 전달받은 이총장은 하오6시쯤 학교로 돌아와 대기하고있던 고윤석부총장· 김용구학생처장· 관련 대학학장 등에게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분위기를 전달하고 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설명.
이 자리에 참석했던 교수들은 경찰의 교내수색· 문교부의 학원소요백서발표 등 정부의 학원대책 강경선회조짐에 비추어 미문화원농성학생들의 처벌은 불가피하다는데 동의했으나 징계의 강도 결정에 부심.
관례에 따라 각 단과대학간의 처벌이 형평을 이루도록 징계정도의 원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교수들은▲교육적인 입장▲지난해9월 학생회구성과 외부인감금폭행사건 등에 관련한 제명조치가 격렬한 학내시위· 시험거부· 경찰투입 등의 사태를 가져왔던 점▲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라는 점▲서울대의 징계가 미문화원농성 관련 나머지 4개 대학에 선례가 될 것이라는 점등을 들어 「제명 불가론」 을 주장했다는 것.
이에 따라 농성학생 중 구속기소 된 학생은 무기정학, 구류학생은 근신, 훈방된 학생은 경고처분하기로 징계기준이 결정되었던 것.
○…징계결정 4시간만인 18일 하오4시쯤 장병규 문교부 교육정책실장이 김용구 학생처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교부뿐 아니라 관계당국이 모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고 김처장이 즉시 문교부로 가야했다.
서울대가 구속학생에 대해 제명이외의 처벌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
○…학교측은 문교부가 불만을 표시하고 징계문제를 재론할 것을 요구하자 즉각 대책회의를 소집.
19일 상오9시30분 고부총장 주재로 열린 본부 및 관련대학 보직교수회의에서 단과대학측은 『징계를 번복하는 것은 교수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낳게되며 그렇게되면 학생지도에 어려움을 겪게된다』 는 입장을 내세우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주장했으며 2시간여 동안의 회의는 뚜렷한 결론 없이 끝났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단과대학보직교수는 『이 문제는 이제 단과대학의 손을 떠난 문제다. 총장의 결심에 달려있다』라고 일선교수들의 굳은 의지를 설명.
○…문교부의 이총장에 대한 사표수리방침은 이총장이 지리산연습림에 내려가 있던 19일 하오부터 거론된 듯.
징계파문이 예상외로 커지자 이총장은 지리산에 내려간지 24시간만인 이날하오 7시쯤 급히 귀교, 다음날 긴급학장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했으나 이날 하오10시쫌 장 문교부교육정책실장이 총장공관으로 이총장을 방문해 사표수리가능성 등 징계파문에 대한 수습책을 논의했다는 것.
이총장은 이날 밤 사퇴결심을 굳힌 듯 20일 출근이 평소보다 30분 정도 늦어졌으며 김 학생처장과 함께 출근.
이총장은 또 이날 아침 예정됐던 학장회의를 급히 취소, 미처 연락을 받지 못한 수원· 연건동캠퍼스의 교수들은 관악캠퍼스로 출근했다가 돌아가기도 했다.
○…구속기소 된 미문화원농성학생들에 대해 무기정학을 결정한 18일의 각 대학 징계위원회는 시종 무거운 분위기.
17일 밤 통보를 받고 18일 상오9시 공대· 자연대· 사회대 회의실에 각각 모인 학과장은 한결같이 갑작스레 징계위원회가 소집된 배경을 전해듣고 침울한 표정들.
징계에 대해서는 대부분 시기상조론을 펴 징계결정이 어려웠다는 것.
특히 공대의 경우는 학과장들이『재판이 진행중이니 결과를 기다려 처벌문제를 논의하자』 고 강하게 반발. 학장이 『최근 정부당국의 학원대책이 전 같지 않다. 특히 이 사건과 관련, 법무부장관이 경질될 정도이니 미온적인 자세만 고집할 수 없다』 고 설득했으나 학과장들의 태도가 확고해 회의는 징계를 학장에게 위임한 후 끝났을 정도.
또 사회대에서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자 전학연 의장인 김민석군(22·사회학과4년)의 징계문제도 거론됐으나 교수들이 『김군은 이번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다』 고 처벌을 보류했던 것.
○…이총장의 사표는 20일 상오11시쯤 문교부 김하준 총무과장이 총장공관에서 받아갔다.
이총장은 사표를 쓰기 위해 총장실에서 잠시 공관을 다녀왔으며 함께 사표를 제출한 고부총장의 사표는 부총장실에서 접수됐다.
○…정부가 서울대총장경질을 검토한 것은 징계결정 직후인 18일 하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제석 문교부장관은 김찬재차관, 장병규 교육정책실장, 정희천 교육정책실제3조정관을 장관실로 불러들여 하오7시30분까지 2시간이 넘도록 구수회의를 했었다.
이 시간 회의장인 장관실 문은 굳게 닫혀진 채 어딘가에 통화를 위해 간간이 전화를 찾으러 나오는 참석자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굳어있었던 것.
○…문교부가 서울대총장 「경질가능성」에서 「경질 방침확정」을 결정한 것은 20일 상오였다는 후문. 총장경질과 결정번복을 놓고 고심하던 문교부는 결정번복이 현체제로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총장경질로 기울었다는 것.
20일하오의 개인적인 약속을 모두 취소한 손장관은 상오에 총무과장이 받아온 고부총장사표를 먼저 수리.
○…이현재 서울대총장의 후임자 임명을 의한 임시국무회의는 당초 주말인 20일하오3시로 잡혔었으나 대학총장 한 명을 경질하는데 휴일에 국무회의까지 소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견이 나와 2일 상오9시로 변경됐다는 후문.
이 전 총장의 사임설은 서울대의 미문화원농성관련학생들에 의한 무기정학징계처분이 결정된 직후부터 간간이 대학주변에서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전격적으로 경질될 줄은 몰랐다는 표정들.
서울대측의 징계결정이 있은 직후 정부 일각에서는 문교부의 소신과 서울대총장의 「소신」 이 각기 달라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징계조치내용을 뒤엎어야 한다는 강경론도 대두됐었으나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면 다시 조정되지 않겠느냐는 온건론이 우세해 그대로 추인을(?)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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