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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례, 인성교육으로 최고…녹차를 학교 급식 후식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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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우리 차(茶)문화의 역사는 이웃 중국·일본과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일본인 모로오카 다모쓰(諸岡存) 등이 현장 답사를 통해 1940년 출간한 『朝鮮の茶と禪(조선의 차와 선)』에는 “이곳(전남)에서 생산되는 차는 일본의 차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차는 불교를 통해 건너온 것이니 조선이 본가이지요” 같은 구절이 나온다.

박권흠 한국차인연합회 회장
녹차 1~2잔에 과일 5개분량 비타민
“난 녹차 자주 마셔 성인병 없어
80대 중반에도 혈액 나이는 40대
녹차 소비 늘어 값 싸지도록 해야”

하지만 21세기 한국 녹차의 위상은 초라하다. 2011년 국내 녹차 생산량은 2110t에 불과했다. 같은 해 일본의 해외 수출물량(2232t)보다 적다. ‘사이즈’보다 ‘내용’은 더 심각하다. 커피의 압도적 위세에 눌려 한국 녹차는 소수의 충성스러운 중장년층 애호가 사이에 행해지는 별난 취미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젊은 층은 외면한다.

오는 25일은 제36회 ‘차의 날’이다. 이날부터 이틀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잔디마당에서는 차의 날을 기념한 ‘팔도차문화 축제’가 열린다.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눌 수 있는 노천 찻자리 1000개가 마련되고(두리차회), 한·중·일 다례 시연, 올해의 명차·명다기 품평대회, 차 상품 장터 등이 펼쳐지는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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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차인연합회를 25년째 이끌고 있는 박권흠 회장. 서울 안국동 차인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차를 만난 건 인생의 행운”이라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부터 차문화축제를 열고 있는 한국차인연합회 박권흠(84) 회장을 최근 만났다.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92년부터 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박 회장은 누구보다 투철한 한국 녹차 옹호론자다. 녹차의 효용, 차문화 실태, 확산 방법 등을 들었다.

박 회장은 “내 나이가 팔십대 중반인데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면 여러가지 수치상 혈액 나이가 40대라는 진단이 나온다”며 말문을 열었다. 피가 탁해 고혈압·심장병 등 각종 성인병에 걸리는 것인데 자신의 피는 40년 가량 젊게 측정되고, 그런 결과는 녹차를 자주 마시기 때문이라는 거다. 박 회장은 심지어 “지난해 중국과 일본은 멀쩡한데 유독 우리나라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취약했던 원인도 중국·일본에 비해 차를 덜 마셔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약리(藥理) 효과를 과장해서는 안 되겠지만 녹차가 사람 몸에 이롭다는 연구결과는 수없이 많다. 녹차 연구가 김영경 박사가 쓴 『녹차가 내 몸을 살린다』에 따르면 녹차는 암·심혈관 질환 등 심각한 질병은 물론 탈모·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각종 노인성 질환의 주범으로 꼽히는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효과가 탁월해 1∼2잔의 녹차에는 과일 5개 또는 비타민C 400㎎과 맞먹는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다는 분석이다.

해방 직후 침체돼 있던 한국 차문화는 79년 한국차인연합회가 결성되는 등 중흥 운동이 일었다. 2000년대 들어 녹차의 효능에 대한 각종 임상보고에 웰빙 바람까지 가세해 인기가 치솟았다. 2006년 녹차생산량이 4400t까지 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 방송사의 ‘농약 녹차’ 리포트가 직격탄이었다. 열기가 꺼졌고, 소비가 줄자 생산자들은 찻잎을 더 딸 수 있는데도 수확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실정이다. ▶강력한 각성효과 ▶라이프스타일 소비 차원에서 커피를 즐기는 젊은층에게 녹차는 뒷전일 수 밖에 없다.

박 회장은 “녹차 마시는 절차가 복잡하다고들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식 다례 절차는 까다롭지만 일상 속의 ‘생활 녹차’는 그저 물 끓여 적당히 우려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녹차 가격이 비싼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녹차 소비가 늘도록 가공방법을 다양화하고, 생산확대→가격인하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차문화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여건은 좋은 편이다. 지난해 ‘차산업 발전 및 차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과 ‘인성교육진흥법’이 나란히 제정돼 각각 정부·지자체 차원의 지원책, 미래의 차 애호가를 육성할 근거가 마련되서다.

박 회장은 특히 “초·중·고 학교 급식과 공공기관 구내 식당에서 차를 후식으로 마시도록 하고, 다례를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포함시켜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 특히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녹차는 인위적으로라도 확산시킬 가치가 있는 음료라서다. “다례를 가르쳐 보면 신기할 정도다. 아이들이 얌전하고 점잖아진다”고 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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