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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의 미래의 밥상] 음식은 문화·사회생활의 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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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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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어린 시절 선생님께서는 ‘21세기 우리 생활에 어떤 일이 생길까’라는 주제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휴대용 전화가 생겨서 들고 다니며, 달나라로 수학여행을 갈 것이다. 로봇이 집안 청소를 해주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거나 움직이는 도로로 편리하게 이동할 것이다. 컴퓨터로 공부하게 될 것이라는 명쾌한 예측도 내놨다. 밥 대신 알약만 먹어도 되는 시대가 온다고도 했다.

함께 요리하고 나누는 즐거움 커
밥 대신 알약 먹는 시대 안 올 것

우리는 이런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머릿속에서 21세기의 그림을 그렸다. 비록 인공지능 ‘알파고 사범’의 활약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몇 가지는 이미 실생활의 일부가 됐다. 스마트폰이 돌연 나타나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는 데까지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처럼 저 이야기들 상당수는 21세기 안에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가운데 26세기까지는 실현되지 않을 일이 하나 있다. 밥 대신 알약을 먹는 시대는 500년 아니 1000년이 지나도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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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승진을 축하합니다. 오늘은 빨간색 알약을 서로 한 알씩 나누어 먹도록 하죠. 다같이 꿀꺽!’ ‘오늘 집들이에 와줘서 너무 감사해요. 단백질 알약, 탄수화물 알약, 필수 아미노산 알약을 푸짐하게 준비했습니다. 아, 포만감 알약도 준비했어요. 사양 말고 골라서 삼키세요.’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음식을 먹는가. 영양 공급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겠다는 목적만을 위해 먹는가. 그 어떤 문화 집단과 역사의 장면을 보아도 인류는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를 한다. 친구 결혼식에서 물구나무 서기를 하며 기쁨을 나누진 않는다. 아이가 탄생했을 때 가족들이 함께 줄넘기하며 축하하기보다는 식사 한 끼를 함께 한다.

하버드대 출신의 행동경제학자 테리 번햄과 생물학자 제이 펠런은 그들의 저서 『비열한 유전자』에서 이러한 습성이 원시 인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한다. 우리 선조들은 혼자 사냥을 나가기보다 함께 모여 사냥할 때 더 크고 영양이 풍부한 짐승을 잡을 수 있었고, 협동을 하면 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하게 됐다. 함께 사냥하던 무리가 ‘나 홀로 사냥꾼’보다 경쟁우위에 있었을 것이고, 이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유전자를 물려주었다. 함께 모이면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깨달음은 우리 몸 어딘가에 각인돼 지금은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모여 음식을 먹는 행동으로 발현된다.

음식을 먹는 행동은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행위다. 함께 장에 가서 식재료를 구입해 음식을 장만하고, 빈 술잔에 술을 채워 주고 함께 비우며, 불판 주위에 둘러앉아 지글거리는 고기를 잘라 주면서 우리는 교감하고 사랑한다.

우리의 밥상은 변하고 있다. 교자상에서 식탁으로 바뀌었고, 밥 공기가 수십 년 새 3분의1 크기로 줄어든 반면 밥상 위 고기 비중은 크게 늘었다. 오랜만에 고국에 온 해외동포들은 음식의 간이 예전보다 달다며 놀란다. 최근 급성장하는 간편식은 전통적인 ‘밥+반찬’ 문화를 단품 중심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우리의 밥상이 미래엔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그래도 미안하지만 밥 대신 알약을 먹는 시대는 오지 않는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 비즈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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