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질서 「만년」후진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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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알려면 거리를 가보라는 말이 있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장소가 거리이고 거리의 질서상태가 문화수준의 척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거리질서를 보면 교통질서만년후진국의 면모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지그재그운전, 끼어들기, 추월과 과속 등 난폭운전에 대각선정차 등 가지런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더구나 마이카 붐이 일고부터는 자가운전자들마저 곡예운전에 끼어들고 음주운전이 부쩍 늘어나 거리는 모험과 공포의 장소가 되었다.
이 같은 거리의 무질서를 반영하듯 교통사고도 해마다 급증해 세계 제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에만도 7천4백여명의 귀중한 목숨이 교통사고로 희생됐고 17만여명이 부상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2천년대는 2.6명중 1명이 교통사고를 당하리라는 당국의 경고는 소름이 끼친다.
교통사고의 원인은 크게 보아 차량과 도로의 결함, 운전자 과실 때문에 빚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90%이상이 운전자의 법규위반으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운전자의 무질서가 1년에 20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고 있으며 5천억 원이 넘는 막대한 사회비용을 탕진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거리질서의 문제는 이제 한낱 교통문제나 형사상의 문제가 아니고 중대한 사회문제로 대두한 것이다.
치안본부는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에 대비, 앞으로 1백일동안 특별단속을 실시키로 했다. 경찰은 이기간에 교통안전 시설도 보완하고 주유소나 약국 등에 신고함을 비치해 일반의 고발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경찰이 이번 단속에서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지는 몰라도 더 늦기 전에 일제단속을 실시한 것은 잘한 일이다.
질서를 바로잡는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경찰의 단속강화나 시민들의 고발, 도로의 여건을 개선하거나 계몽과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들 수 있다.
경찰은 그 동안 수많은 교통경찰관을 배치해 규제위주의 단속에 치중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단속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이였을뿐 질서를 바로잡는 근원적이고 영구적인 해결방안이 못되었음을 지금의 실정이 입증하고 있다. 경찰관이 눈에 띄면 제대로 가다가 금방 법규를 위반하는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규제위주의 단속에 한계성을 말해주고 있다.
질서는 한마디로 차례를 지키고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이를 잘 지키면 모든 사람이 이롭고 편리하다. 질서를 지키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불편을 안겨주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질서를 안 지키면 결과적으로 더 큰 불평과 부자유를 준다.
이 같은 질서의식은 꾸준한 교육과 사회의 전반적인 도덕수준과 풍토에서 심어지는 것으로 「자동차문화」의 근간이기도 하다.
교통단속에 상하가 있고 교통법규 준수에 예외가 있다면 이 같은 내외면적 질서는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다.
경찰의 이번 단속이 다분히 규제위주에 치우친다면 난폭운전은 뿌리뽑기 힘들 것이다.
질서 바로잡기에 보다 본질에의 접근을 기해야할 것이며 사회지도층인사부터 앞장서고 질서의 이로움을 인식시키는 질서교육의 일반화에 노력해 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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