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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상황실 열었지만 지역조직 ‘손발’은 안 갖춰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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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호 14면

지난해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국내 방역체계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메르스 위험 지역인 중동에 체류했던 환자가 입국 후에야 증세가 나타나면서 여러 병원을 옮겨 다녔다. 다른 환자와 함께 같은 병실에 입원하는 동안에도, 방문객에게 병을 옮기는 동안에도 방역 당국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방역 당국은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뒤에야 최초 환자가 입원했던 병원 환자와 방문자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정부가 환자가 발생하거나 거쳐 간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오히려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받았다. 격리 대상자가 해외 출장을 떠나는 것도 막지 못했다. 결국 메르스 사태는 38명의 희생자를 내고 7개월 만에야 종료됐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질병관리본부장 자리를 1급에서 차관급으로 승격시키고 음압병실 숫자를 기존의 600개에서 2020년까지 1430개로 늘리기로 하는 등 많은 것이 실현되거나 추진 중이다. 7월부터는 감염 관리 의사와 간호사를 두고 감염 예방관리를 하는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입원 환자 한 명당 하루에 1950~2870원의 감염 관리 수가도 지급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흡한 구석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역학조사관 증원이다. 정규직이 2명뿐이던 역학조사관을 89명으로 늘리기로 했으나 아직 다 못 채웠다. 낮은 연봉에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지방(충북 오송 등)에서 근무해야 하는 데다 계약직이란 점이 작용한 탓이다.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의사를 뽑기 위해서는 일반 공무원보다 월급을 많이 줘야 하고, 그러다 보니 계약직(비정규직)으로 뽑는 고육지책을 쓰고 있지만 고위직 승진 등 장기 전망이 없는데 우수 인력이 오겠느냐”고 지적했다.


질병관리본부 기획조정과 관계자는 “계약에 따라 연봉 1억원 정도까지 받을 수도 있고, 본인이 원하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최장 10년까지 계속 근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는 24시간 대응 긴급상황실(EOC)도 1월부터 가동하고 있다. 11명이 연중무휴로 상주하면서 긴급상황에 대처한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감염병 대비 역량이 부족해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시·도 등에 감염병 전담조직을 갖추고 유사시 동원할 인력을 잘 훈련시켜야 하는데 아직은 훈련도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자체마다 준비 수준에 차이가 크고,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머리(중앙조직)만 있지 손발(지역조직)이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이와 함께 감염 환자에 대한 1차 방어벽은 동네의원이나 지역 중소병원인 만큼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고 교육도 꾸준히 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대책의 하나로 제시된 감염병전문병원의 경우 본격 운영이 이뤄지려면 앞으로도 몇 년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윤 교수는 “올해 초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고 공청회도 열렸지만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게 없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시민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성이 잇따랐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일부 대형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몰려드는 상황이나 병실에 가족·친지들이 줄줄이 병문안하는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오명돈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간병문화는 고유한 미풍양속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류학 분야의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병율 교수는 “1977년 건강보험이 도입된 이후 국민은 동네의원이나 대형병원에서 비용 부담 차이를 별로 못 느낀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했다. 이제 와서 대형병원 진료비를 대폭 인상하려 해도 큰 저항에 부딪힐 게 뻔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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