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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너무 짧은 공기업·은행 CEO의 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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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구
은행연합회장

10년이었던 면세점 허가 갱신기간이 몇 년 전 국회에서 5년으로 단축됐다. 그 결과 지난해 말 허가 갱신에 실패한 롯데면세점은 우리나라 최고층 빌딩으로 확장 이전 하자마자 6개월 이내에 문을 닫아야하는 신세가 됐다. 초기 투자비용과 대량 해고의 문제점 등을 고려할 때 5년이란 갱신기간은 너무 짧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다시 허가기간을 10년으로 환원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신한·우리·KEB하나 평균 2년
짧은 기간에 뭔가 보여주려니
부실자산 늘어 ‘빅배스’ 악순환
성과따라 재임기간 더 늘려야

면세점과 같이 짧은 허가 갱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으로 재선은 불가능하다. 단임 5년의 대통령 임기는 대부분의 임명직이나 선출직의 임기를 5년 이하로 만들어 놨다. 역대 정권의 장관 평균 재임 기간은 1년 4개월밖에 안 된다. 중앙부처의 국·과장은 1년 반이면 거의 모두 보직이 바뀐다.

대통령 임기가 몇 년이 적절하고 연임이 가능해야하는지는 정치학자나 정치인들이 고민해야할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짧은 임기 관례 때문에 생긴 병폐와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다.

1990년 중반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 연방준비은행 그린스펀 의장을 만났을 때 “제가 19대 한국은행 총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깜짝 놀라면서 “아니 한국에 중앙은행이 설립 된지 그렇게 오래되었습니까?”하고 되물었다고 한다. 한 번 선출되면 10년 정도 재임하는 미국 중앙은행의 관례에 비추어 역대 20대에 가까운 한국은행 총재라니 한국은행의 역사가 200년 가까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짧은 임기 문제는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43세에 씨티은행의 회장이 된 존 리드는 17년간 재임했고 현 JP모건체이스 회장 지미 다이먼은 15년째 재임 중이다. S&P500 기업 중 10년 이상 회사를 운영하는 최고경영자(CEO)는 141명에 이른다. 한국에선 재벌 총수는 대물림을 하고 있어 임기가 의미가 없지만 기업 전문 경영인의 임기는 너무 짧다.

대표적으로 임기가 짧은 곳이 공기업과 은행으로, 모두 단임 정신에 투철한 것 같다. 지난 2년 사이에 거의 모든 은행장이 바뀌었다. 최근 이들의 평균 재임기간을 보면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단임 3년이고 농협은행은 2년, 특별한 이유가 있지만 신한·우리·KEB하나 역시 2년 임기다.

대통령과 같이 최고의 권력과 힘을 갖고 있어도 제대로 된 개혁을 완수하기엔 임기 5년이 짧다. 전문 경영인의 임기 2~3년은 조직 문화를 바꾸고 필요한 개혁을 하고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여 실행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중임이 일반화된 선출직 노조위원장을 상대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건강한 노사관계의 정립을 위한 근본적 변화를 이루기도 쉽지 않다.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할 노조는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하게 되고 CEO가 과객이 되는 상황에선 ‘좋은 게 좋다’는 생각과 줄대기 문화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

또 짧은 임기에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실적을 내기 위해서는 질적인 성장보다 양적인 성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가격을 깎거나 리스크 관리가 느슨해지면서 자산이 빠른 속도로 늘고, 이후 차기 CEO는 부실자산을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를 반복하는 것을 보아왔다. CEO가 바뀔 때마다 새로 임명된 CEO는 임원 물갈이를 해 전임 흔적을 지우기를 한다. 이로 인해 회사를 이끌고 갈 인재를 소모해버리는 것 또한 문제이다.

우리는 CEO를 만나면 의례 인사로 묻는 질문이 임기가 언제까지냐지만 외국의 CEO에게 ‘임기가 언제까지냐’고 물으면 의아해하며 ‘임기?’하고 되묻는다. 실적이 나쁘거나 주어진 목표와 임무를 실행하지 못하면 이사회는 언제든지 이들을 교체할 수 있고 잘하면 계속하게 한다. 임기를 묻는 질문이 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다.

이제는 주식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라도 기업의 지배구조를 제대로 갖추고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전문경영인이 주주를 대리해 경륜을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CEO의 재임기간을 성과에 따라 지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변화가 필요하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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