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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자취 서린 대구, 그의 문학관 없어 안타까웠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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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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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교수는 20년 전 석사학위 논문으로 이육사의 시 세계를 연구하다 그에게 매료됐다고 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는 청년기를 대구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안타까웠습니다.”

‘264 작은 문학관’ 만든 박현수 교수
사재 3억 털어 2층짜리 전시실 꾸며
“육사의 큰뜻 알리는 교육장 만들 것”

경북대 박현수(50·국문학과) 교수가 ‘264 작은 문학관’을 만든 이유다. 박 교수는 18일 대구시 중구 대안동에 문학관을 열었다. 이육사 문학관은 이육사의 고향 안동에 이어 두 번째다.

박 교수는 2005년 경북대에 부임하면서 문학관을 구상했다. 하지만 자금 마련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낡은 한옥이 나오자 덥석 잡았다고 한다.

작은 한옥을 개조해 1층은 기획전시실, 2층은 상설전시실으로 꾸몄다. 연면적 100㎡의 ‘작은’ 문학관이다. ‘264’는 이육사가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구금됐을 때 수인번호다. 상설전시실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됐을 때 사진과 ‘광야’ ‘청포도’ 등 그의 시, 유고시집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 건립에는 3억원이 들었다. 대구 중구청에서 지원받은 4000만원을 제외하곤 국어교사인 형 광수(53)씨와 박 교수가 절반씩 부담했다.

박 교수가 이육사와 인연을 맺은 건 20년 전이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그의 시 세계를 연구했다. 논문 제목은 ‘육사 시에 끼친 주자학적 영향’이었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모두 44편의 시(한시 포함)를 남겼다.

박 교수는 논문을 쓰기 위해 안동·대구·부산 등 육사의 고향과 친척들이 사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그의 삶에 매료됐다고 한다. 육사는 1904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나 16세 때 대구로 이사했다. 이후 37년 서울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대구에서 생활했다. 독립운동을 하다 수차례 투옥됐으며 44년 베이징의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본명은 원록. 박 교수는 “젊은 날 이육사가 품었던 큰 뜻을 알리는 교육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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