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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의 신명품유전] 미술사가 버렸던 춘화(春畵)의 재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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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우도(雲雨圖)란 명칭으로 불리던 우리 옛 그림이 있다. 때로 춘투도(春鬪圖), 일소도(一笑圖)라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남녀의 성희(性戱) 모습을 묘사한 춘화(春畵)의 다른 이름이다. 독립된 그림 품목으로 엄연히 존재했지만 미술사 연구 대상에서 비껴나 소장가 안방 깊숙이 숨겨져 쉬쉬 하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성(性)을 대놓고 말하는 걸 금기시했던 한국 사회의 폐쇄적 성향 탓이다.

춘화는 대체로 풍속화의 지류로 소개돼 왔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문화전’ 제 6부 ‘풍속인물화-일상, 꿈 그리고 풍류’(8월 28일까지)에도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등 춘의풍속도(春意風俗圖) 몇 점이 나왔다.

18세기 후반에 특히 풍성한 생산성을 보인 풍속화 경향은 당대의 난만한 현실 의식을 보여준다. 화원(畵員) 선발에 각별했던 정조대왕은 풍속화 문제를 출제하며 “모두 보자마자 껄껄 웃을만한 그림으로 그려라”고 특별히 지시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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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면 ‘화첩(花帖)’의 첫 그림. 25.5X22㎝, 19세기 말. 방안을 장식한 그림과 기물 묘사가 뛰어나다. [사진 중국미술연구소]

최근 일본에서 건너온 춘화 화첩 한 질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일본의 고미술전문 화상인 사카모토 고로(89·坂本五郞)의 소장품이다. 푸른색 표지에 ‘화첩(花帖)’ 단 두 글자가 붓글씨로 쓰여 있고 바로 남녀 쌍이 어우러진 춘화 30폭이 이어진다.

주인공은 매 장면 거의 동일 인물로 보여 지며 그림마다 다른 체위가 섬세하게 묘사됐다. 양반 가문에서 교육용으로 주문 제작한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화첩이 미술사가의 눈길을 끄는 이유는 정작 남녀상열지사의 몸짓이 아니라 배경 때문이다. 농염한 행위가 이뤄지는 방과 실내를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그림과 기물이 오히려 이 그림을 그린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게 빼어나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등 내로라하는 명품을 연상시키고, 색색 도자기와 장식품은 중국과 일본을 망라해 국제적이다.

화첩을 연구한 홍선표 한국미술연구소 이사장은 “실내장식의 배치나 기물로 볼 때 19세기 후반에 보여 지는 유흥 풍조로, 시각적이나 장식적인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한국 회화사의 중요작”이라고 평가했다. 홍 이사장은 “총 30면으로 구성돼 조선시대 춘화 화첩 중 면수가 가장 많은데다 그림마다 당시 성풍속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모티브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낙관이 없는 이 춘화를 그린 이는 누구일까. 의견은 엇갈린다. 홍 이사장은 이한철(1812~1893 이후)로 추정되는 조선말기 화원을 지목했다. 이원복 전 경기도박물관장은 동 시대 화원을 지낸 백은배(1820~1901)를 꼽았다. ‘간송문화전’에는 이한철의 ‘반의헌준(색동옷 입고 잔을 올리다)’과 백은배의 ‘탄금야흥(거문고를 뜯는 들놀이 흥취)’이 전시되고 있다. 과연 누가 이 아름다운 춘화를 그렸을까.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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