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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유령 급식업체 150여 곳 활개, 교묘해지는 급식비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부산·경남에서 학교 급식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위장업체를 설립해 입찰에 참가하는 건 예사로운 일이 됐다. 다양한 범죄수법은 업체간 치열한 경쟁이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위장·밴드업체로 무더기 응찰
학교급식 전자조달 약점 공략
다른 업체 친환경 인증 도용도
부산북부경찰서, 66명 입건

부산북부경찰서는 최근 입찰방해 등 혐의로 실질적인 급식업체(주 업체) 대표 이모(44)씨 등 12명과 이들 회사의 위장업체(페이퍼컴퍼니) 대표 5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수법은 이렇다. 주 업체 대표는 지인과 가족·직원 명의로 3~10개의 위장업체를 설립한다. 주 업체 대표는 이들 위장업체 대표의 공인인증서 등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입찰에 응한다. 응찰가격은 적당히 조정한다.

낙찰받은 주 업체는 식재료의 공동구매와 보관, 물류를 담당하면서 위장업체에서 공급받은 것처럼 서류를 꾸며 각 학교에 배송한다. 위장업체는 사무실은 있지만 직원을 두지 않거나 식재료를 보관할 냉동·냉장고 없이 허가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시설만 갖춘다. 위장업체라 하더라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현장실사를 거쳐 급식업체로 허가하면 응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밴드업체’를 두는 수법도 있다. 주 업체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밴드업체는 주 업체와의 거래를 이유로 주 업체 명의를 빌려 입찰에 참가하고 청과·농산물·수산물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적발된 12개 업체 등은 2014년 10월께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600여 회에 걸쳐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eaT)’에서 529억원 상당의 납품계약을 따낸 혐의를 받고 있다. 주·위장업체가 무더기로 응찰해 낙찰률을 높인 결과다. 이 시스템은 최저가 낙찰 형태여서 입찰 업체 수가 많을수록 유리해진다.

급식업체는 식재료 계약 과정의 공정·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eaT의 문제점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학교와 업체 관계자가 대면하지 않는 이 시스템은 중복 입찰을 막기 위해 같은 시·도에서 동일인 명의로 1개 업체만 입찰해야 한다. 2년 이상 식재료 판매실적이 없으면 입찰도 제한된다. 하지만 위장업체가 개별운영되는 것처럼 속여 응찰 가능한 ‘입찰코드’를 받아 무더기로 입찰하면 속수무책이다.

경찰 조사결과 현재 부산의 급식업체는 200여 곳이 넘는다. 하지만 실제 운영 중인 주 업체는 40~50곳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위장업체라는 말이다.

앞서 지난 1월 경남에선 위장·유령업체를 두고 동시 응찰로 입찰을 방해(760억원 상당 방해)한 14개 급식업체가 적발됐다. 또 식재료 납품을 가장해 차명계좌로 납품대금 수백만원을 빼돌린 사립고교 행정실장, 친환경 농산물 인증유효기간이 지난 다른 업체의 인증스티커를 붙인 납품업체, 식재료 소독증명서를 위조한 납품업체 등이 적발됐다.

부산북부경찰서 김민석 경감은 “2013년 이후 전자입찰 규정이 강화됐지만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위장업체를 두는 수법이 널리 퍼졌다”며 “전문성이 떨어지는 불성실 업체가 낙찰받으면 급식재료의 질이 낮아지고 학생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 지속적으로 비리를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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