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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해고 룰…첫 도입 GE는 이미 없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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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성과제 도입이 재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현행 호봉급 제도의 부작용이 노출되고 있어서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은 “호봉제는 60세 정년의무화 제도를 가로막고 청년층 고용을 줄이는 문제를 야기한다”며 성과 중심 임금체계 도입을 촉구했다. 성과제가 자리 잡으려면 공정한 평가가 전제돼야 한다.

GE 조직문화 새바람 이끄는 셈퍼 총괄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평가 제도를 구축한 것으로 정평이 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어떻게 임직원을 평가할까. GE의 인적자원(HR·Human Resources)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제니스 셈퍼 조직문화혁신팀 총괄부사장을 본지가 지난 11일 단독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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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 셈퍼 GE 기업문화 혁신 총괄은 “과거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젊은 인재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GE코리아]

GE 인사 제도는 저성과자 하위 10%를 해고 대상에 올리는 이른바 ‘10% 룰’로 대표되는 ‘신상필벌(信賞必罰)’로 유명하다. 이는 1981년 45세의 나이로 GE의 최연소 회장이 된 잭 웰치가 도입한 것으로, 그는 2001년 퇴임할 때까지 이 시스템을 활용해 기업 가치를 40여 배나 높였다. 이 시스템은 많은 대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셈퍼 부사장은 ‘10% 룰’에 대해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옛날얘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유럽에서는 ‘웰치 경영지침서를 버려라(Tearing up the Jack Welch Playbook)’라는 관용어가 통용될 정도다.

‘10% 룰’을 버린 GE가 현재 채용하고 있는 인사 시스템 중 대표적인 게 ‘GE PD(GE Performance Development)’다. 이 제도는 우선 기존 연 1회 실시하던 임직원 평가를 수시 평가로 전환했다. 여전히 직원들은 평가 대상이다. 과거에 비해 더 자주, 더 다양한 사람들이 직원을 평가한다. 하지만 과거처럼 ‘해고자’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다. 수시 평가는 모든 직원이 언제든지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이 피드백들이 모여 추후 직원을 평가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셈퍼 부사장은 “직원들에게 서로에 대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상명하복 문화가 사라지고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협업이 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GE PD는 관리자급(manager) 역할도 새롭게 규정했다. 통상 관리자는 부하 직원에게 명령을 내리고 평가하는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에선 관리자를 ‘팀원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영감을 부여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GE빌리프(GE Beliefs)나 패스트워크(Fast Works)도 현행 GE 인사 시스템이다. GE빌리프는 임직원이 업무상 판단을 내릴 때 행동과 사고,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패스트워크는 소규모 팀 단위 아이디어가 즉각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startup)의 업무 추진 방식을 적극 벤치마킹했다.

셈퍼 부사장은 "과거 10% 룰이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해 차별적 보상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GE PD GE빌리프 패스트워크로 대표되는 현행 인사 시스템은 직원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성과를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달라진 부분을 설명했다.

새로운 변화는 항상 진통을 동반한다. 과거 잭 웰치의 ‘10% 룰’ 역시 도입 과정에서 많은 잡음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GE의 혁신은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셈퍼 부사장이 이끌고 있는 ‘기업문화 혁신팀’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 있다.

그는 “우리 팀은 무조건 바뀐 시스템을 적용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대화로 공감대를 먼저 찾는다. 이후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에 직원들의 불만이 적다”고 설명했다.

셈퍼 부사장은 “직원들이 더 이상 GE를 가전제품을 만드는 제조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중심의 디지털 회사로 인식한다”는 것을 혁신의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그는 또 “혁신은 특정 사업 분야나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 시대의 모든 기업이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며 한국 기업의 혁신을 주문했다.

하지만 일부 국내 기업이 ‘혁신’이라며 새로운 평가 제도를 도입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GE가 폐기한 구식 연평가 제도인 경우가 많다. 잭 웰치가 1990년대 경영 환경에 맞게 고안한 개념을 2016년에야 도입하는 셈이다.

LG경제연구원 전재권 책임연구원은 “국내 기업의 평가 시스템은 성과 측정보다는 직원들 줄 세우기의 도구일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제니스 셈퍼=미국 펜실베이니아 뮬런버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조직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음료회사 펩시콜라를 거쳐 1998년 GE에 입사한 후 19년간 HR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1년에 한 번 직원을 평가하던 시스템을 버리고 상시 평가로 역량을 끌어내는 ‘PD’시스템을 도입했다.

박성민·문희철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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