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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 공짜그림 자선공세에 시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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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화가들이 공짜그림의 강청에 시달리고 있다. 신체장애자를 돕는다, 회관을 짓는다, 장학 기금을 조성한다, 잔디구장을 만든다고 『그림을 달라』는 단체·개인의 「자선」(?)공세에 홍역을 앓는다. 어떤 단체는 공문을 보내고, 어떤 단체는 직접 찾아다니거나 전화로 설득, 독촉, 협박으로 화가의 선심을 낚아낸다.
한국신장협회는 문공부장관의 미술행사후원, 명칭 (신장병환자 돕기 자선전)사용승인 공문(약년l월17일)까지 붙여 신장병 환자를 돕자는 취지로 화가들에게 작품 희사를 요청했다.
실명예방협회도 앞 못보는 사람에게 광명을 찾아준다고 화가들에게 「그림자선」을 요구했다.
성나자로마을은 나환자들을 위해 화가들에게 도자기 그림을 부탁, 도화전을 열었다.
순국선열 묘지를 성역화 한다고 모 여당 정치인의 이름으로 화가들에게 취지문을 발송, 그림을 내달라고 호소했다. 그림을 그려주지 않는 작가에게는 전화를 걸어 으름장까지 놓았다는 것. 이 일은 물의를 빚어 여당 정치인이 화가들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제주도 자연사 박물관도 화가들에게 작품을 영구 보존하겠다고 기증을 요청했다.
한국예총은 예총회관 건립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화가들에게도 자기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자선그림을 부탁하는 단체는『그림값이 비싸니까 이를 팔아 기금으로 삼는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그림을 요청한다고 말한다.
스님이 절을 짓겠다고 화가들을 찾아다니고, 목사가 교회를 세운다고 그림을 원한다.
체육 단체가 잔디구장을 만든다고 그림 희사를 청하고, 권투선수가 도장을 세운다고 공짜 그림을 부탁한다
종교단체가 영아원을 짓는다, 사회단체가 어려운 학생을 위해 장학기금을 마련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화가의 그림을 희사받는다.
재소자· 출소자를 위한 자선전, 수재민·불우이웃을 위한 자선전도 열린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월전 장우성 화백 (73·예술원 원로회원)은 『화가는 그림이 생명입니다.그림을 달라는건 생명을 내놓으라는 말 아닙니까…. 가장 귀중한 것을 내놓을 때는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지요. 대가가 없으면 명분이라도 분명해야 합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71)은 『나도 농아자 30만명의 복지를 위해 기금을 마련해 오는 입장이어서 명분이 있는 일은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사회가 해야할 일을 개인에게 떠 맡기는 것 같아서 어떤때는 짜증이 납니다』
유산 민경갑 화백(52)은 『화가는 좋은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국가 사회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선전 이라고 태작을 내놓는 것보다는 차라리 도와야할 일이면 처지에 맞게 돈으로 돕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화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선전이란 이름으로 작가를 괴롭히는 일만 생각하지말고, 좋은 작가를 만들기 위해 건전한 사회 풍토를 만들어 달라고 내세우고 있다. <이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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