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중의 썰로 푸는 사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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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는 흔히 보는 텃새입니다. 주로 논, 하천, 습지에서 삽니다. 청계천에도 왜가리가 날아와 물고기를 잡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왜가리는 무리를 짓지 않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혼자입니다. 너무 흔하다 보니 눈길 한번 주는 이도 없습니다.

시화호에서 왜가리를 봤습니다. 넓은 습지 한 가운데서 바다를 바라봅니다. '난파선' 같은 폐기물 위에 서 있는 왜가리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입니다. 긴 코트를 입고 서 있는 사람 같습니다. 사람을 닮아서일까요. 더 외로워보입니다. 우리 삶의 한 단면을 봅니다. 정호승님의 시 <수선화에게>가 생각납니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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