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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8-브라질 491, 극과 극 올림픽 커트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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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홀 약 1m 파 퍼트를 남긴 미리암 내글의 눈빛은 뜨거웠다. 내글은 이 파 퍼트를 넣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글은 경기 후 “한 타, 한 타가 매우 소중하다”고 했다. 지난 9일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 있는 다르 에스 살렘 골프장 블루코스에서 벌어진 유럽여자투어(LET) 랄라 매리엄컵에서다.

내글의 이날 성적은 이븐파, 최종합계 9오버파 41위로 신통치는 않았다. 그러나 내글은 큰 불만은 없었다. 세계랭킹은 다섯 계단 올랐다. 내글의 세계랭킹이 466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미국-한국-일본 투어에 비해 참가 선수들의 랭킹이 낮은 유럽 여자 투어에서 41위를 해도 세계 랭킹이 올라갈 정도로 내글의 랭킹은 밑에 있었다.

내글이 한 타 한 타에 신경 쓰는 이유는 올림픽 때문이다. 내글의 국적은 올림픽 개최국인 브라질이다. 한국 여성 골퍼가 세계 랭킹 461위라면 올림픽은 꿈도 꾸지 않는다. 한국 선수 중 내글 보다 랭킹이 높은 선수는 150명이다. 그러나 한 국가 최대 4명으로 제한된 국가 쿼터 제도 때문에 내글이 올림픽에 나갈 가능성이 있다.

유럽여자투어에는 또 다른 브라질 선수 빅토리아 러브레이디도 참가했다. 러브레이디는 랄라 메리엄컵에서 내글 보다 좋은 5오버파 공동 21위를 했다. 세계랭킹은 전 주 515위에서 491위로 24계단이나 도약했다. 러브레이디는 “올림픽 꿈이 점점 실현되고 있다”고 했다.

국제 골프 연맹은 60명이 출전하는 올림픽 출전 랭킹을 매주 발표한다. 국가별 쿼터가 있어 여자의 경우 세계랭킹 300위가 넘는 선수도 15명이나 포함됐다. 이 올림픽 출전 랭킹에서 내글은 58위, 러브레이디는 60위다. 지난 주에는 각각 57, 59위였는데 하나씩 밀렸다. 인도의 아디티 아쇼크라는 복병이 유럽투어에서 21등을 했기 때문이다.

두 선수가 60위 내에 있지만 이 올림픽 랭킹이 최종 결정일인 7월 11일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두 선수는 매주 커트라인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런데도 두 선수가 올림픽 출전을 위해 열심히 뛰는 이유가 있다. 브라질은 개최국이기 때문에 최소한 출전권 1장은 보장됐다. 랭킹에 관계없이 브라질 선수 중 1등이라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브라질 여자 선수 중 경쟁자는 내글과 러브레이디 뿐이다. 두 선수 중 비교 우위를 가진다면 세계랭킹에 관계없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두 선수는 매 라운드 후 상대의 성적을 신경 쓰는 듯했다.

내글은 “두 명이 모두 나가면 좋지만 만약 한 명만 나간다면 내가 나가고 싶다”면서 “원래 친했는데 올림픽 경쟁이 치열해진 후 러브레이디와 같이 밥도 안 먹는다”며 웃었다. 반쯤 농담이지만 반쯤 진담인 듯 했다.

내글은 2008년까지 LPGA 투어에서 5년을 뛰었다. 별 성적을 못 냈다. 당시엔 독일 국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이었고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브라질 선수로 뛰기 시작했다. 현재 그의 캐디백에는 브라질 국기가 새겨져 있다.

러브레이디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USC 대학을 졸업해 한국에 대해 안다. 한국 기자라고 하자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러브레이디는 “올림픽에 나갈 수 있고 메달을 딸 자신이 있다”고 했다. 러브레이디는 또 “여자 골프를 호령하는 한국 선수들을 존경하며 한국 선수들처럼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올림픽에 참가하기는 쉬워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는 어려울 것이다. 골프는 컨디션에 따라 편차가 큰 스포츠지만 선수층이 얇아 수준 차이도 크다. 유상건 상명대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여자 골프에서 랭킹 100위 밖 선수가 리디아 고나 박인비, 렉시 톰슨 등 세계 랭커들과 경쟁해서 우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컷 없이 4라운드를 치르면 타수 차이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선수들은 최고 선수들이 모이는 LPGA 투어에서 매주 힘겨운 순위 경쟁을 치르고 있다. 올림픽에 갈 수 있는 한국 선수 중 4위 안에 드는 것은 매우 힘들다. 11일 현재 랭킹으로 보면 9위도 올림픽에 가지 못한다.

올해 2승을 한 장하나도 못 가고, US오픈 우승자인 유소연도 못 가고, 천재 김효주도 못 간다. 일본 지존 이보미(15위)도, 국내 지존 박성현(20위)도 현재로서는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브라질 국적이라면 461위면 가능하다.

러브레이디는 “올림픽 메달 딴 후 LPGA 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유럽 투어 상금 랭킹 48위인 러브레이디가 LPGA 투어로 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LPGA 투어 선수들과는 차이가 있다.

박인비는 지난 해 “최고를 가려야 할 올림픽에서 상위 랭커들이 출전 못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쟁보다는 참가에서 의의를 찾는 올림픽 정신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나왔다.

그러나 박인비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올림픽에서 기준 기록이 있는 종목이 많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야 참가할 수 있다. 올림픽 골프에는 기준 기록이 없다.

한국과 브라질 여자 골프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 경쟁은 치열하다. 내글처럼 한 타, 한 타가 매우 소중하다. 한국 선수들도 소중하고 브라질 선수들도 소중하다. 그러나 경쟁 수준이 다르다. 러브레이디와 내글은 도티 아디나(필리핀, 538위), 티파니 챈(홍콩, 566위), 로라 아스캘런(벨기에, 574위) 등과 경쟁한다.

라바트=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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