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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국방이냐 방위분담비 증액이냐 … 선택 강요당할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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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4 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결정됐다. 본선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1일 인디애나주에서 유세하고 있는 트럼프. [AP=뉴시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처음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고 나섰을 때 그가 당선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에서 줄곧 선두를 지켰고 지난 3일 실시된 인디애나 프라이머리에서도 승리했다. 결국 라이벌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과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경선 포기를 선언했고 트럼프는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가 됐다.


인구의 17%가 넘는 히스패닉과 무슬림, 공화당 주류와 전문가들의 비판이 빗발치고 있지만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미 여론기관 라스무센이 지난달 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41%의 지지로 민주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처음으로 2%포인트 앞섰다. CNN을 비롯한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41%대 54%로 뒤진다고 나타났지만 트럼프는 전문가들로 탄탄한 선거팀을 꾸려 약점을 보완해 나가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백인 중산층 및 일반 중하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유무역과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 자임으로 그들의 경제상황이 나빠지고 국가부채가 커졌다고 인식하면서 트럼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57%가 미국 문제의 우선을 강조하고 있고 49%는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단순히 개인 의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저변에 깊숙이 뿌리 박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미국의 신고립주의가 발현될 수 있다. 퓨리서치 조사에서는 49%가 ‘대외경제 개입이 미국 내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낮추고 있어 좋지 않다’는 데 공감했다. 반면 ‘새로운 시장 창출과 성장 기회를 제공해 좋다’고 응답한 사람은 44%였다. 트럼프는 “자유무역이 미국을 죽이고 있다. 중국에 일자리를 다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설령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지 않더라도 ‘미국 우선주의’ 또는 신고립주의로의 변화 추세는 더 심화할 수도 있다. 민주당의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기존의 미국 외교·안보·경제·사회 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성공에는 현 미국 경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가장 크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경제 내셔널리즘’이 대두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트럼프의 자유무역협정(FTA) 폐해 강조, 대중국 무역역조에 대한 시정 의지는 바로 이러한 기조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한·미 동맹 한 차례 홍역 치를 가능성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무엇보다 안보에 투영돼 유럽과 아시아의 우방에 스스로 방어하든가 아니면 방위 분담을 증대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문제도 고치지 못하면서 다른 국가를 지원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의 안보 부담을 감소시키겠다는 입장도 제시하고 있다.


트럼프는 한·미 동맹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 않다. 이전에도 가끔 언급했지만 트럼프는 지난달 27일 워싱턴DC 메이플라워호텔에서 한 외교정책연설에서 동맹국의 방위 분담 증대 요구를 공식화했다. 그는 다음날 유세장에서 한국을 경제 괴물로 묘사하면서 방위비 분담에는 인색하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뒤 CNN과의 회견에서는 현 50%의 미군 주둔비용 부담을 100%로 올릴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트럼프의 정책적 기조와 성향을 고려할 때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한·미 동맹은 한 차례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 증대를 요구할 것이고, 한국 내에서는 치열한 반미 시위가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목격한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극단적인 정책을 지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동맹은 미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측면이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한의 핵무기 위협까지 가중돼 한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동맹 관계를 국제정치 이론에서는 ‘자율성-안보 교환 모델(Autonomy-Security Trade-off Model)’이라고 한다. 한국이 주한 미군기지 제공, 방위비 분담, 미국 외교정책 지지 등으로 자율성을 양보할 때 미국은 핵우산과 같은 안보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한·미 동맹은 때에 따라 출렁거려 왔다. 1969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우방 스스로에 의한 방어를 강조하자 한·미 동맹은 크게 흔들렸고 결국 한국은 방위세 등을 신설해 자주국방 노력을 경주해야 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도 주한미군 철수를 일방적으로 선언했고 한국의 백방 노력으로 3400명 철수에 그쳤다. 89년에는 미 의회에서 넌-워너 법안을 통과시켜 대규모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통보했다. 결과적으로는 7000명만 감축된 채 중단됐다.


미국의 대외 안보지원 능력 점점 약화현재 미국의 대외 안보지원 능력은 점점 약화하고 있다. 미 정부의 재정적자를 해소하고자 국방비를 계속 감소시키고 있고, 미군의 규모도 대폭적으로 감축되고 있다. 미 육군의 경우 2001년 57만 명이었으나 2015년 12월 현재 49만 명으로 감축됐고 2018년에는 45만 명 수준이 될 예정이다. 공군·해군·해병대도 상당한 정도로 규모를 감축시키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한반도 위기 시 지원 가능한 미군 규모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안보지원이 계속돼야 한다면 한국은 한·미 동맹에 대한 최근 정책부터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아시아 재균형’이라는 미국 정책에 보조를 맞추기보다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요구함으로써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자 했다. 또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서도 끈질긴 협상으로 액수를 줄이고자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도 태도를 제대로 정하지 못했고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는 애매한 입장에 머물고 있다. 자율성-안보 교환 모델에 의할 경우 한국의 자주적 및 중립적 태도는 미국의 안보지원 가능성을 낮출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은 분명한 대미정책 방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정책 변화에 추종하는 것이 싫다면 국방예산의 대폭 증대를 통해 대대적인 자주국방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은 한·미 동맹을 계속 견고하게 유지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에 과감하게 자율성을 양보하고 트럼프의 제안을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트럼프의 동맹 인식 정확히 파악해야한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그의 국정 철학, 경제와 동맹에 관한 인식, 한국에 대한 견해 등을 포괄적이면서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 최선 대응 방향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당장 트럼프의 견해를 바꾸고자 노력해야 할 사항도 존재할 것이고 트럼프의 정책 방향에 부합되도록 한국의 정책을 변경해야 할 사항도 포함될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대결을 서슴없이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국이 어떻게 처신할 것이냐에 관한 고민과 결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균형 외교’라는 말은 좋게 들리기는 하지만 실천이 어렵고 미국이라는 유일하면서도 결정적인 동맹국을 상실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태 후 중국의 태도나 최근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지나친 내정간섭을 고려할 때 중국에 대한 기대를 계속할 경우 제대로 얻는 것도 없으면서 한·미 동맹만 약화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 반미 감정이나 반미 성향의 시위나 주장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직선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그러한 것이 한국에 대한 그의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개발로 인해 미국의 핵 억제 노력이 필수적인 상태에서 과거와 같은 감정적 접근을 계속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나 크다.


한미연합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미군과의 협조체제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현지 사령관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신임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 겸임)이 갓 부임해 장기간 근무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와의 협조체제를 강화하고 그로 하여금 한·미 동맹 관계에 대한 건전한 내용을 트럼프에게 보고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미 FTA 부정적 시각에도 대비 필요미국이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솔직한 토의와 결정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한·미 관계를 다소 손상시키더라도 지금처럼 1조원 정도만 부담할 것인가, 아니면 2조원 정도로 증대시키더라도 한·미 관계를 계속 강화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협상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고 지금부터라도 미국의 인식을 바꿀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한·미 경제동맹 격인 FTA도 흔들릴 수 있다. 트럼프 캠프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제프 세션스(앨라배마) 상원의원은 지난달 25일 상원 전체회의에서 “한·미 FTA로 우리의 수출이 늘어난 것은 거의 없다. 한국의 대미 수출만 엄청나게 늘었다. 그 결과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의 교역에서 무역적자는 280%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FTA 재협상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지명이 된 현 상황에서도 ‘설마’ 하며 아무런 대비 조치를 강구하지 않아서는 곤란하다. 50% 정도의 확률이라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하고 그것이 외교·안보·경제 정책 종사자들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다. 미리 대비한 만큼 위험은 줄어들 것이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hrpark55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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