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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으려면 융합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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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30면

일러스트 강일구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 스탠리 홀에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식품의약품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강의는 의사, 변호사, 식품의약품 전문가들에 의해서 진행된다. 수강생들은 석·박사과정 학생, 박사, 박사후과정생들로 다양하다. 학교는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UC버클리대의 생물·화학계열 그리고 경영대학원과 로스쿨, UC 데이비스대의 농학계열로 구성되어 있다. 식품 혹은 약의 구조식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절차,그리고 식품 및 의약사고 발생시 손해배상 책임까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한자리에서 다루어진다.


전공 단위도, 학교 단위의 교육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은 하나의 목적 단위의 교육이다. 식·의약품 선도국가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다. 다르다는 것은 불편함을 준다. 그러나 그 다름은 활용하기에 따라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서로 합쳐져 잘 버무려지면 시스템이 되고 또 다시 시스템끼리 합쳐지면 더 큰 에너지인 시너지(시스템에너지)가 발생한다.


최근 조선업의 구조조정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조선산업은 반도체· 자동차·철강과 함께 우리 경제의 중요 축 중 하나였다. 10여년 전만 해도 외채 중 일부가 쏟아져 들어오는 조선사들의 선수금(회계처리상 부채)이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런데 지금은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이 바짝 추격을 해오고 있는 동안 기업은 오판했고, 정부는 방관했다.


중국의 추격이 비단 조선업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전자·전기·자동차·화학 등 거의 모든 산업군이 비슷한 상황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발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구조조정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때 등장한 용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사업·재무·지배구조·기술·인력 등 모든 내적 구조변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구조조정이라는 단어에 매우 부정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처음으로 구조조정을 접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때로, 타율적 압박에 의해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산업 전반에 걸쳐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너무 높아 자산매각 및 인력감축 외에는 선택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는 점도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4차 기술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건비 절감을 통한 수익성 제고가 답이 될 수는 없다. 창의와 혁신을 통해 구글·테슬라·아마존과 같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해 내야 한다. 거창한 이름의 기업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름에 전기기술을 결합하여 전기가 잘 통하는 필름을 세계 최초로 만든 우리 중소기업도 있다. 융합만이 질적 격차를 벌릴 수 있고 그로 인한 장기적 부가가치의 창출이 가능하다.


융합의 필요성에 비해 지금까지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 이해관계의 충돌이 원활하게 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 충돌은 불가피한데 이것을 막는 게 바로 국가의 역할이다. 하지만 역할 발휘가 쉽지 않다. 정부 부처와 국회 상임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융합의 영역에서는 분야 구분이 잘 안된다. 자동차와 인터넷 그리고 위치정보의 결합, 방송과 통신 그리고 콘텐트의 결합, 의료와 인터넷의 결합 등 다양한 형태의 융합이 현실화되고 있는데 현장에선 새로 개발된 융합상품의 인허가를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애매하다.


새로운 분야라 규율할 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언뜻 생각하면 규제가 없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규제하는 법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턱대고 했다가 나중에 무슨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조기에 제거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애매한 사안을 신속하게 결론낼 수 있는 부처간 통합실무조직이 필요한 이유다.


안전과 위험 등을 다룰 사회적 논의도 이어져야 한다. 독일에서는 자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무인자동차 경쟁에서 미국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베를린에서 출발해 남부로 뻗어 있는 A9 아우토반을 실도로 주행에 제공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발도 만만치 않다. 사고발생시 책임, 안전성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에서도 융합은 실천과제다. 대학에서 전공간 벽이 너무 높다. 기초의 축적이 없는 융합은 없으며, 전공의 정체성이 지금까지 학문의 발전을 이끌어온 것은 맞다. 그러나 이제는 기초를 기반으로 융합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한 시기가 됐다. 새로운 융합과제들이 더 많이 연구로 이어져야 한다. 새로운 시도에 더 많은 용기를 불러일으켜 줘야 한다. 한 강의실에서 한 명의 교수가 가르친다는 생각도 뛰어넘어야 한다. 한 명이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없다. 모르면 함께 가르치면 된다.


융합을 위해서 변해야 하는 또 하나의 분야가 법이다. 시장에서는 법이 발목을 잡는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법은 안정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세상의 흐름을 외면한 채 뒷전에 물러나 있을 수는 없다. 법 하면 우리는 소송을 떠올린다. 법률가들은 소송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지 입법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러한 소송중심적 법 문화가 입법을 통한 사회적 갈등의 해결과 선제적 제도개선이라는 중요한 점을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 사법부를 통한 분쟁의 해결은 최후의 수단이지 최선의 수단은 아니다. 기업들도 경영의 궁극적 목표가 이윤의 창출에 있지만 반드시 보호해야 할 사회적 이익이라는 내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위기는 언제든 닥쳐온다. 중요한 건 위기때 생존하기 위한 새로운 동기와 시도다. 그것이 바로 융합이다.


최승필한국외국어대?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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