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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스타트업은 돌다리 두드리는 과정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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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신인섭 기자

최근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를 찾아오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프라이머가 4월 25일 엔턴십(Entreship) 10기 참가 신청을 받기 시작해서다. 엔턴십은 기업가(Entrepreneur)와 인턴십(Internship)의 합성어로 프라이머가 예비 사업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창업 실습 프로그램이다. 권 대표는 e메일이나 문자, 회사로 온 편지를 모두 꼼꼼히 읽고 있다.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 창업가를 한 명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 가능성 검증 기간
6년간 86개팀에 노하우·이론 지원

권 대표는 벤처 1 세대 경영자다. 지금까지 5개 회사를 창업했다. 1997년 이니텍, 98년 이니시스를 설립해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그가 투자 회수에 성공한 기업 가치는 4000억원에 달한다. 2009년 그는 사업 노선을 바꿨다. 벤처 창업가에서 후배 벤처인을 키우는 엑셀러레이터로 변신했다. 2010년 1월 뜻을 함께하는 벤처 1세대 경영자들과 프라이머를 설립했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환경을 조성하고 후배 창업가들에게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프라이머는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서비스·마케팅·경영 등을 고민하며 창업가들의 성공을 돕는다. “실리콘밸리의 인큐베이터는 창업 자금을 지원하고 경영은 창업자에게 맡기는 방식입니다. 프라이머는 자금 지원과 경영 자문을 동시에 제공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공동창업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가 스타트업을 키운 지 6년째로 접어들었다. 프라이머를 거친 팀은 지금까지 86곳이다. 그중 8팀이 문을 닫았다. 벤처캐피털(VC)의 후속 투자를 받은 팀은 56%에 달한다. VC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이 전체 20%에 불과한 점을 보면 빼어난 성적이다. 그는 초기 창업자를 위한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창업 단계마다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하는데, 초기 스타트업 경영에 도움되는 이론과 경험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미 자리를 잡은 스타트업을 위한 조언이 대부분이다. 그 중엔 얼리 스타트업이 피해야 할 내용도 많이 있다. 권 대표는 “사업 초기엔 투자보다는 조언이 중요하다”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주기 위해 엑셀러레이터로 나섰다”고 말했다.


창업가에서 엑셀러레이터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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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골프를 예로 들며 창업 과정을 설명했다. 골프를 배울 때 처음엔 코치 말을 잘 듣는다. 하지만 공이 좀 맞는다 싶으면 자기만의 스윙을 고집하게 마련이다. 권 대표는 “좀 안다고 생각해 코치 말을 무시했더니 10년째 90타를 친다”며 “창업 초기에 경험자들의 조언을 들어야 하는데 이를 불편해 한다”고 지적했다.

사업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면 검증된 경영 원칙이나 더 큰 그림을 본 선배들과 거리를 둔다.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직관대로 회사를 움직인다. 말 잘 듣는 사람을 영입하고 배우기보다는 가르치는 위치에 올라서려 한다. 권 대표는 “단계별로 자신보다 더 큰 사람을 품어야 성장한다”며 “심지어 공동대표를 하거나 일시적으로 대표이사 자리를 양보해도 좋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스타트업을 임시 조직”이라고 말한다. 창업가는 제품 개발 능력, 창업경진대회 입상, 언론의 조명, 공공기관의 인증을 통해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이 검증받았다고 여긴다. 시장에서 화제가 돼 매출이 늘면 성공이라 생각한다. 권 대표는 “모두 오해”라고 단언한다. 진짜 사업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검증된 사업방식과 제품을 가지고 어떻게 잘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사업을 진행한다. 스타트업은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불확실하다. 가능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사업의 본질인 이유다.

그는 한국 대표 벤처기업의 스타트업 시절을 예로 들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초기 모델은 사이버 사진 갤러리였습니다. 수년 간 어려움을 겪다 사내 개발팀이 만든 한메일이 성공하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네오위즈의 첫 아이템은 날씨 정보를 제공하는 ‘푸쉬 서비스’였습니다. 엔씨소프트가 처음부터 게임 개발회사 였을까요? 리니지를 개발한 회사가 어려워져 인수했는데, 게임이 대박나자 아예 업종을 바꾼 경우입니다.”

성공은 우연처럼 찾아온다. 말 그대로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이다. 권 대표는 “꾸준히 준비한 기업만 기회를 잡아 성공했다”고 말했다. 우연처럼 보이는 기회가 손에 들어 왔을 때, 알아보고 이를 활용한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엑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에 안목과 경험을 제공한다. 경영 기초 이론을 공부하고,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 코치 말을 듣고 더 나은 스윙을 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불확실한 가설을 세운 다음 시장에서 이를 확인하며 수정해야 스쳐가기 쉬운 행운을 잡을 수 있다.

권 대표는 이를 ‘린 스타트업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용어를 만들어낸 이는 스탠포드대 교수다. 린 스타트업을 요약하면 ‘창업가 스스로 가진 것은 실험해본 적 없는 가설 뿐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사무실 밖에 나가서 잠재 고객을 만나라. 시장에서 가설을 확인해야 한다. 고객의 반응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점진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벤처 창업 전문가인 앨리스테어 크롤은 저서 [린분석]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뭘 만들지 알아내기 위해 일하는 과정이 스타트업’이라고 정의했다. “6년 간 운영한 스타트업랩은 ‘린 스타트업 방식’을 활용한 교육 방식입니다.

잠재 고객과 고객 가치를 정의하고 가설을 세웁니다. 최소 10~20명의 고객을 만나 가설이 유효한지 확인합니다. 교육을 마치고 실전에 들어간 팀에겐 두 달 동안 200명 이상의 잠재 고객을 만나 질문하고 배우게 합니다. 돌 다리를 제대로 두드려 보고 지나가라는 것입니다.”


잘하고 좋아하는 아이템 골라야


권 대표는 모든 사람이 창업가로 성공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20~30팀을 면담하면 한 팀 정도 선택한다. 유행하는 창업 아이템을 들고온 이들을 가장 먼저 돌려 보낸다. “뜬다고 언론에 나왔다고 그걸 보고 창업 아이템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얄팍하고 뻔합니다. 본인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고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이,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해도 그런 일을 창업 아이템으로 잡아야 합니다.”

그는 한국 벤처 업계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가 창업했던 90년대보다 더 큰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당시 산업 구조를 바꾼 것은 인터넷과 개인용컴퓨터(PC)였다. 사무실 업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이 PC로 하는 일에 혁신이 일어났고 사회를 바꿨다. 지금은 모바일과 스마트폰이 혁신의 주역이다. PC는 책상 위에 있었지만, 스마트폰은 사람과 함께 움직인다. PC를 통해 진행하던 수많은 사업이 모바일 통해 바뀌고 있다.

“이미 새로운 변화의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달해 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다가올 세상에서 혁신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이들을 키워내는 데 보람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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