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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두려워하거나 미워할 대상이 필요한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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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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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공원에서 맨주먹으로 호랑이도 때려잡게 생긴 근육질 남자가 힘자랑하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는 사회적 권력도 지닌 듯 주변 남자들은 그를 향해 아부성 감탄을 쏟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근육질 남자 뒤편 나무에서 거미 한 마리가 내려와 허공에 멈추었다. 발견한 사람이 “거미…”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는데 근육질 남자는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 지르며 멀리 달아났다.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공포증(phobia)이라 한다.

공포증은 기본적으로 억압된 분노다. 그 뿌리는 대체로 오이디푸스기의 감정과 관련 있고, 그 대상은 중요한 양육자다. 서너 살짜리 아이는 해결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먼 곳에 있는, 아무 상관없는 대상에게 옮겨 놓는다. 억압·투사·전치 등의 방어기제가 사용된다. 또한 공포증은 자신이 상대보다 약자라는 인식 위에 서 있다. 두려운 대상에게 대항할 힘이 없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낀다. 공포증은 벌레·어두움·물건 등에 분노와 공격성을 옮겨두고 그것을 두려워함으로써 자신과 부모 모두를 위험한 감정으로부터 보호하는 아이의 생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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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증에서 전치 방어기제를 제외하고 억압·투사 방어기제만 사용할 때는 불특정 대상을 공격하는 심리 작용이 일어난다.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 자신에게 잘못한 일 없는 사람을 향해 공격성을 쏟아낸다. 묻지마 범죄나 악플 공격이 그런 사례다. 개인적으로 악플 때문에 마음 고생 한다는 이들을 목격할 때마다 안타깝다.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자신에게 애정도 없는 사람이 하는 말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고 싶다. 악플은 악플러의 증상이다. 감정을 성숙하게 처리할 줄 모르는 사람, 공정하고 합리적인 생존법을 모르는 사람의 문제가 표출된 현상이다.

악플을 대하는 최상의 방법은 악플러의 증상에 대해 자비심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말을 바람처럼 흘려보내면 된다. 그것도 어렵다면 역공포증(counterphobia)이라는 생존법을 사용할 수 있다. 역공포증이란 공포심을 이겨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공포스러운 대상이나 상황과 접촉하는 행위를 이른다. 그토록 고통 받으면서도 굳이 악플을 확인한다는 사람은 이미 역공포증이라는 전략을 사용 중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자신도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는 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악플러를 미워하면서 자신의 분노에 정당함까지 확보하려는 것은 아닌지.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