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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빅토르·위고」 의 소설이 생각난다. 빵 한 조각을 훔쳐 먹은 죄로19년의 형을 살고 나온 「장·발장」은 세간의 눈초리가 차가운 것에 실망한다.
어느 날 피곤에 지쳐 한 성당의 사제관에서 잠을 자다가 은제식기에 마음이 흐려져 다시 그것을 훔친다.
이 사실이 결국 헌병의 의심읕 받게된다. 그는 사제관으로 연행되어 신부와 대질한다.
작가 「빅토르·위고」는 바로 이대목에서 깊은 감동을 준다.
신부는 너무도 태연하게 「장·발장」에게 말한다.
『그것 말고도 촛대까지 주었는데 왜 그건 안가져 왔소? 그것도 은으로 만든 것이라오』
신부는 그에게 두개의 은촛대를 더 내주었다.
「장 발장」의 얼굴에선 실로 오랜만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는 이때부터 속죄(속죄) 의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 시절에도 부동산은 수지가 맞았던지 「장·발장」은 많은 돈을 모아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들을 돕는다. 나중엔 그런 덕망에 힘입어 비록 작은 도시지만 시장까지 된다.
소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런 저런 곡절이 계속된다. 그러나 마지막 대목에서 「장·발장」이 죽는 순간 그의 얼굴엔 행복감이 넘쳐보였다.
우리 사회가 전과자들을 이렇게만 대해 준다면 세상은 한결 밝아질것이다. 소설속의 신부가 「장·발장」을 온정으로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는 여지없이 전과 몇범의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요즘 어느 40대의 전과 7범이 서점에서 성경 한권을 훔친 것이 기소되어 징역8월의 선고를 받은 얘기가 있었다(중앙일보 11일자 사회면).
그 주인공은 역시 흐느끼며 눈물을 횰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눈물은 절망이나 회한의 눈물이 아닌 감동의 눈물이었다는 사실이 좀 의외다. 그것은 전과 7범에겐 파격적인 형량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훔친 동기는 함께 복역했던 한 무기수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좋은 목적과 나쁜 수단의 상형이다.
이를테면 기도를 올리기 위해 촛불을 훔친것도 죄인가. 이해답은 물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오늘의 법은 응보형을 기피하고 있다. 보복적인 형벌보다는 속죄의 형별이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주인공이 만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면 그는「장·발장」이 흘렸던 것과 똑같은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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