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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에브리싱 사우디 모하마드 왕자의 탈석유 개혁

중앙일보

입력

우리 세대는 (기성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꿈도 다르다.”

지난 21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5년생으로 올해 31세다. 지난해 1월 왕위에 오른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의 아들로 왕위 계승 순위 2위다. 그는 애플을 세운 스티브 잡스에 열광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으며, 비디오 게임을 하며 자란 신세대다. 그는 “늘 새로운 나라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고민은 사우디의 새 시대를 천명하는 예고편이었다.

나흘 후 본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25일(현지시간) 발표한 ‘사우디 비전 2030’이다. 내용은 파격적이다. 석유 의존형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겠다는 선언이었다. 사우디는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하루 1019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다. 지난해 전체 세수에서 석유부문의 비중은 70%에 이르렀다. 모하마드 왕자는 이런 현실에 대해 “사우디는 석유에 중독돼 다른 부분의 성장이 막혔다”고 말했다.

1932년 건국한 사우디는 개혁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에 이어 그의 아들들로 통치가 이어졌지만 변화가 없었다. 든든한 오일머니 때문이다. 석유를 판 돈으로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으니 변해야 할 동기가 약했다.

사우디에 위기감이 싹튼 건 유가하락 때문이었다. 2014년 중순까지만 해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다. 하지만 이후 유가가 최고치에 비해 70% 이상 추락하자 사우디의 곳간은 비어갔다. 2010년 말 연 10% 수준이던 경제성장률도 지난해 말 3.35%까지 내려 앉았다. 파산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개혁을 모색하는 이유다.

선봉에 선 인물이 모하마드 왕자다. 그는 세계 최연소 국방장관이란 타이틀을 단 지난해 3월 예멘 공습을 주도하며 국제 무대에 본격 데뷔했다. 경제발전위원회와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최고위원회 의장도 맡아 경제정책도 사실상 좌지우지하자 세계의 언론은 그를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불렀다.

30대 초반의 신세대 기수가 펼치는 정책은 파격적이다. 아람코 민영화가 대표적이다. 기업공개(IPO) 이후 아람코 지분 5% 미만을 매각한 자금과 국유지ㆍ공단을 팔아 모은 돈으로 2조 달러 가량의 국부펀드를 조성한 뒤 도시 개발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광산업을 육성해 2020년까지 일자리 9만 개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사우디 인구의 70% 가량이 30대 이하지만 청년 실업률이 30%에 이를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기ㆍ석유ㆍ물 보조금을 폐지했다. 부가가치세를 도입하고, 사치품에 추가 세금을 물리겠다는 등 세제 개혁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이런 개혁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비원유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16%에서 50%로 늘일 계획이다.

모하마드 왕자의 경제 개혁안은 역설적으로 보면 원유 시장 내 사우디의 통제력 감소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우디는 더 이상 과거처럼 세계 원유시장을 쥐락펴락 할 수 없다. 승부수는 그래서 나왔다. 마켓워치는 ”사우디의 개혁안은 원유 수요가 정점에 달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앞으로 시장점유율 전쟁은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젊은 왕자의 실험 앞에 장애도 많다. 사우디 내에서 아람코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벌써 나온다. 물과 전기 에 지급되던 보조금이 사라지면서 여론도 악화했다. 모하마드 왕자는 “『손자병법』과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책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가 손자나 처칠처럼 탁월한 전략을 펼칠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하현옥 기자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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