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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많고 수익 낮고…글로벌 금융사들 ‘굿바이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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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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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사의 ‘한국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 독일 알리안츠그룹이 한국알리안츠생명을 중국 안방보험에 매각했다. 싱가포르의 BOS증권은 국내 지점 폐쇄 신청을 냈고, 지난 22일 증권선물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다. 네덜란드 ING증권의 서울 지점을 인수해 영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이다. 영국계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이 투자은행(IB) 부문을 정리하면서 한국 사업을 축소했고, 바클레이스캐피털증권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박상용 연세대 명예교수(경영학)는 “글로벌 금융사가 여러군데서 사업하다가 전반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전망이 좋지 않은 한국을 우선순위에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리안츠생명 등 한국서 잇단 철수
노조 견고해 구조조정 쉽지 않고
한국 시장 적응 못한 것도 원인

글로벌 금융사가 앞다퉈 한국 사업을 정리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외신에 따르면 씨티은행이 진출한 아시아 18개국의 총자산이익률(ROA)은 평균 1.4%로 나온다. 그러나 한국에선 0.4% 수준이다. 현재 국내 은행권이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 도입하고자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도 수익성 때문이다. 떨어지는 수익 환경 속에 강한 노조가 버티고 있어 원래 변동비용인 인건비가 사실상 고정비용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문종진 명지대 교수(경영학)는 “수익성이 떨어지면 사업 규모를 줄여야 하는데 한국은 과거부터 노조가 견고해서 이것도 어려우니 결국 팔고 떠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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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이 떨어지는 데에는 저금리 기조도 한 몫을 했다. 은행은 예금으로 조달한 자금을 대출로 내주면서 수익을 주로 낸다. 그래서 조달금리와 운용금리 간 차이가 은행의 영업에서 가장 중요하다. 예대금리차를 보여주는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연말 국내 은행 1.58%, 외국계 은행 1.2%까지 떨어졌다. 역대 최악 수준이다.

보험업계도 심각하다. 저금리가 이어져 운용수익을 거두기 힘든 상황이고 2020년 국제회계기준 IFRS4 2단계 도입으로 자기자본과 자산을 늘려야 하는 부담에 빠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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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업황도 문제지만 외국계 금융회사가 한국 내에서 효율적인 영업 전략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한국알리안츠생명은 1999년 생명보험업계 4위인 제일생명을 인수한 이후 2000년대 초중반 고금리 저축성 보험 상품을 많이 팔았다는 점을 지적받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최근 ‘알리안츠 한국법인 매각가격 논란’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 안방보험이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을 낮은 가격에 인수해 논란이 있는데 고금리 확정형 저축성 보험계약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형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의 배타적인 금융 문화에서 외국계 보험사가 소매 금융을 파고드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해외에선 방카슈랑스 등을 통해 다변화했는데 국내는 ‘아줌마 파워’로 대변되는 설계사(FC)가 여전히 핵심인력”이라고 설명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아시아금융학회장)는 “금융당국이 글로벌 금융사가 진출해서 자율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금융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며 “이와 함께 금융 인력을 제대로 배출할 수 있는 세계적인 경영대학원(MBA) 유치에도 힘쓰는 등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병철·이태경·김경진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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