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 '거국 민심' 만들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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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역대 최저치인 29%로 떨어졌다. 어제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주에 비해 10%포인트 급락했으며 부정적인 응답자는 그 두 배인 58%에 달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밑으로 무너져 내린 건 충격이다. 20%대 지지율은 임기말 대통령이 심한 레임덕에 시달릴 때 나타나는 수치다. 청와대는 국정운영을 위해 최소한 지켜내야 할 마지노선을 30%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의 강력한 수호지역이었던 대구·경북에선 34%, 50대 연령층에선 35%를 기록했다. 전 지역, 전 연령층에서 콘크리트 지지율이 붕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상처는 입어도 흉터는 안 나게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은 총선 민심이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선거후 민심관리’의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청와대 참모의 무능과 불통을 다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선거 닷새 만에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20대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발언을 했으나 그 진정성과 후속성을 보여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분명히 알아야 할 건 이번 선거의 제1심판 대상이 새누리당이 아니라 박 대통령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대통령 주변에선 이 대목을 명시적으로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대목을 대통령이 가슴에 통렬히 새기는 데에서부터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엊그제 새누리당의 원유철 원내대표가 전직 국회의장, 당대표 등 고문단을 초청해 쓴소리를 들었는데 이런 일은 사실 박 대통령이 먼저 했어야 할 일이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새로운 변화가 박 대통령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친박 계파의 해체를 선언해야 한다” “대통령이 새누리당한테 섭섭하다고 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야당과 타협해야 한다”는 소리들이 쏟아졌다. 입에는 쓰지만 몸에 좋은 이런 고언(苦言)들을 과연 누가 대통령한테 전달하겠는가. 원유철 대표나 김수한 전 의장이 박 대통령에게 면담신청을 할 것인가, 청와대 부속실장을 통해 보고서로 보낼 것인가.

집권당이 원내2당으로 전락하면서 청와대를 뒤덮은 심리적 패닉 상태를 모르지 않는다. 그럴수록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이 마음을 비우고 세상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고문단을 청와대로 모셔 그들의 쓴소리를 경청하길 바란다. 그 다음엔 전직 국무총리들과 경제·사회·종교 원로를 초청하고, 그 다음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천정배 국민의당 대표와 만나는 ‘거국적 민심수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렇게 모아진 거국 민심은 박 대통령에게 심리적 안정과 폭넓은 사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생각의 저수지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형식과 절차를 밟는 박 대통령의 태도 자체가 국민에게 선거의 보람, 참여의 만족, 대통령과의 일체감을 부여한다. 창조경제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창조정치가 더 필요하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제대로 된 선거후 민심관리로 29% 지지율 문제를 풀어 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