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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골프 우등국, 정치 열등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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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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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시중에 떠도는 유머 ‘골프와 정치의 10대 공통점’. 남의 돈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꼭 돈이 왔다 갔다 한다. 일이 잘되면 자기 이름 박힌 물건을 만들어 나눠준다. 가방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따로 있다. 어깨에 힘 들어가면 망한다. 초보일수록 남을 가르치려 든다. 일단 맛을 들이면 끊기가 어렵다. 좌우보다 중간이 안전하다. 망쳤을 때의 핑계가 무궁무진하다. 상대방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다.

올해 지금까지 치러진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9개 대회 중 8개에서 한국인(장하나 2승, 김효주·김세영 1승씩) 또는 한국계(리디아 고 2승, 노무라 하루·이민지 1승씩) 선수가 우승했다. 여자 세계 랭킹 10위권에 한국(계) 선수 6명이 들어 있다. 이쯤 되면 ‘민족적 소질’이 있다고 볼 만하다.

한국(계) 프로의 성공 배경으로 가족과 후원사의 과감한 투자와 어렸을 때부터의 훈련이 주로 거론되는데,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속설도 있다. 체육 교재 등에 등장하는 이른바 ‘장장근(長掌筋·Palmaris longus m.) 발달설’이다. 팔뚝 안에 길쭉한 모양으로 있는 이 근육이 동양인,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인에게 잘 형성돼 있고, 이는 팔목과 손의 움직임을 보다 정교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주장이다. 호미질·젓가락질·바느질 때문에 유전적으로 이 근육이 좋은 한국 여성이 많다는 설명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2년 전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팀이 낸 논문에 따르면 퇴화로 인해 미국인의 14%는 이 근육이 없다. 팔뚝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맞댄 뒤에 손목을 구부렸을 때 손목 가운데에 힘줄이 튀어나오지 않으면 이 근육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장장근 설은 가설에 불과하다. 설정덕 중앙대 체육대학장은 “장장근이 숏게임과 퍼팅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되나 한국 여성에게 특별히 발달돼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진우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장장근이 없는 경우가 꽤 있다. 이 근육은 별 쓸모가 없어 연결 힘줄을 자가이식용으로 잘라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골프에 대한 민족적 소질 문제는 좋은 연구거리가 될 법하다. 마찬가지로 정치에는 왜 이렇게 집단적 소질이 없는지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속 시원하게 규명해 줬으면 좋겠다. 혹시 유전적 영향으로 안면근이 특별히 발달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싸움만 하는 이가 많은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든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