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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名) 낙선사례에도 계보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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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하신 주호영 후보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패인은 오직 한가지, 후보 자신의 부족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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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전 장관. [중앙포토]

2008년 4월9일(18대총선). 대구 수성을에서 당시 한나라당 주호영 후보(65.36%, 4만6131표)에게 패한 무소속 유시민 후보(32.59%, 2만3005표)는 짧은 낙선소감을 남겼다. 이후 이 글은 지역주민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국회 관계자는 17일 “당시 선거가 치열했던 만큼 ‘패해 아쉽다’‘억울하다’는 낙선소감을 예상했는데, 유 후보는 상대후보에 대한 축하와 함께 모든 패인을 자신에게 돌려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당선사례보다 더 눈길을 끄는 ‘명(名) 낙선사례’의 계보는 이번 4ㆍ13총선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①자아비판형= 대표적인 게 구상찬 후보의 낙선 사례다. 그는 서울 강서갑에서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후보에게 5%p(5138표) 차로 패한 뒤 지역주민과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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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갑에서 낙선한 구상찬 후보. [중앙포토]

“현명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신 유권자 여러분께 다시한번 잘 선택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금태섭후보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저를 비롯해 중앙당, 청와대 등 오만방자한 저희들의 잘못된 행태에 채찍을 드신 유권자 여러분께서 이번 새누리당의 완전한 패배로 조금이라도 화나셨던 마음이 풀리셨으면 합니다.”

-왜 이런 낙선 사례를 남겼나.

“나의 솔직한 마음을 낙선 사례로 썼을 뿐이다. 지금도 이 글을 쓴 걸 후회하지 않는다다. 오히려 잘 썼다는 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

-당과 청와대가 정말 오만방자했나.

“총선 당일 투표소에 갔더니 내 앞에 줄을 선 40대 아주머니가 새누리당 후보인 나를 경멸하는 듯하게 쳐다보더라. ‘아~ 이번엔 혹독한 심판이구나’하는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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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을에서 낙선한 새누리당 강요식 후보. [중앙포토]

구로을에서 낙선한 새누리당 강요식 후보도 “저는 어느 누구의 탓을 하지 않겠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라며 “선거운동기간 중에 혹시라도 섭섭한 점이 있다면 저의 부덕의 소치로 아시고 널리 사랑의 마음으로 감싸주세요”라는 낙선 사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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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을에 도전했던 이재오 후보. [중앙포토]

②성찰형= 낙선을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로 삼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무소속으로 서울 은평을에 도전했던 이재오 후보는 “그동안 격려해주시고 지지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거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19대 임기가 끝날때까지 성찰의 시간을 갖겠습니다”라는 낙선 인사를 올렸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도 “제가 진 빚을 어찌 다 갚을까요. 이런 저런 원망과 핑계는 다 접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습니다"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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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갑에 출마했던 새누리당 안대희 후보. [중앙포토]

대법관 출신으로 서울 마포갑에 출마했던 새누리당 안대희 후보는 페이스북에 ‘그동안 과분한 사랑과 지지에 감사합니다’는 제목의 낙선인사에서 “새누리당과 저에 대한 따끔한 국민 여러분의 회초리를 달게 받겠습니다. 민심이 오만했던 새누리당을 심판했습니다”라면서 “이제 우리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국민들께서 다시금 안아 주실 때까지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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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용섭 총선정책공약단장. [중앙포토]

야당에선, 더불어민주당 이용섭 총선정책공약단장의 낙선사례가 눈에 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광주 광산을에 출마해 낙마한 뒤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민주가 제 1당이 되었지만 야권의 심장인 광주에서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저의 부족함이 컸다”며 “현실정치를 떠나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더민주 비대위원, 선거정책공약단장을 맡은 이 후보는 광산구을에서 출마해 권은희 후보와 맞붙었으나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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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을에서 낙선한 국민의당 이계안 후보. [중앙포토]

③약속지키기형=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공약을 지키겠다고 다짐한 후보도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평택을 국민의당 이계안 후보는 14일 ‘평택시민께 올리는 말씀’이라는 글을 통해 “창당된지 2개월밖에 안되는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 저를 믿어 주시고 투표해 주신 평택시민 여러분께 정말 과분한 사랑과 은혜를 입었다” 며 “여러분이 모아주신 마음과 마음을 깊이 새겨 새로운 정치, 평택의 미래를 위해 심기일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선거에서 평택시민의 택함을 받지 못했지만 대표 선거공약이었고 또 국회의원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평택나눔재단’을 만들어 따뜻한 사회, 따뜻한 평택에 일조하고자 한다” 며 “평택나눔재단 추진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여 약속한대로 나눔기금 100억원 조성을 이뤄내겠다” 고 강조했다.

④귀향형·반성형=재선의 문턱에서 넘어진 새누리당 김동완 후보(충남 당진)는 페이스북과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돌이켜 보면 제 고향 당진에서 지난 5년간 저의 부부는 행복했다.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한 번도 쉬지 못하고 허겁지겁 살아왔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제 가족과 이웃들과 오손도손 살고 싶다. 이웃으로 포근히 감싸주신다면 더 없는 행복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총선에서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어기구(53) 당선인에게 1.6%p(1180표)차로 석패했다.

반성문에 가까운 낙선사례를 한 후보도 있었다. 더민주의 오창석 후보(부산 사하을)는 선거에서 진 후 페이스북에 “졌습니다. 그것도 압도적인 수치로 졌습니다. 지지자들의 성원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득표율이라 사과를 드리는 것조차 송구스럽습니다”라고 밝혔다.

⑤재도전형=더민주 박수현(충남 공주-부여-청양) 후보는 14일 부여행 버스에 승차하면서 페이스북을 통해 “소박한 꿈이 있었습니다. 부여와 청양에서 버스타는 국회의원을 진짜로 보여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민과 국회의원이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공주에서처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 비록 낙선자로 버스를 타지만 버스 안에서 주민들이 너무 반겨 주십니다. 부여와 청양의 변화, 주권자와 정치인의 신뢰부터 시작합니다. 행복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박 후보는 의원시절 서울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공주를 고속버스로 출퇴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박 후보는 당선된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에게 3.1%p(3367표)차로 패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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