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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이 만난 사람

대선 출마 얘기할 때 아니다, 1년 동안 뭔가 성과 보여드려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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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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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당선자는 “그동안 반대 그 자체가 야당의 존재 이유였다면, 앞으로는 반대하는 논점과 대안까지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토론과 타협과 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투표 바로 다음 날인 14일 아침. 대구 범어네거리 코너, 유세차에 혼자 서서 손을 흔들며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 당선자(호적상 58세·실제 60세)다. 지나가며 자동차가 경음기를 ‘빵빵’ 울리고 창을 열고 손을 흔드는 사람, 차를 세워놓고 달려와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다. 이게 보수의 아성인 대구 한복판인가 싶다.

지역벽 허문 김부겸 대구 수성갑 당선자

잠시 짬을 내 바로 옆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커피숍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빵을 찾았다. 아침도 거른 채 당선 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구에서 민주당 계열의 야당 의원이 당선된 것은 1선거구에서 2명씩 뽑던 1985년 12대 총선 이후 31년 만이다.

김 당선자는 2000년 16대 총선 때 경기도 군포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된 뒤 17대(열린우리당), 18대(통합민주당) 내리 3선을 하고 갑자기 대구로 내려갔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다. 2012년 총선,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 이어 세 번째 야당 간판을 달고 도전했다.

당선 인사를 하는데 시민 반응이 뜨겁네요.
“당선된 뒤에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선거운동 하는 중에도 아파트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고, 뜨거웠어요.”

옆에 있던 이헌태 대변인이 끼어들었다. “공원에서 벚꽃 구경하던 아주머니들이 사진을 함께 찍으려고 하는 바람에 다음 일정이 계속 늦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런 일은 박근혜 대통령 이후엔 대구에서 처음 보는 현상입니다”고 자랑했다.

김 당선자가 말을 이어갔다.

“학교 근처에서는 공부에 방해되니 유세를 잘 안 해요. 그런데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초등학생들이 몰려와 ‘김부겸, 김부겸’ 하고 외쳐요. 집에서 부모들이 하는 얘기를 들은 겁니다.”

| 변화에 대한 가득한 열망 눌려 있다
세 번 도전한 나를 통해 표출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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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우비를 입고 선거운동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시 후보(오른쪽). 대구시 신매동 대형마트 앞에서 선거 유세를 하던 중 김진국 대기자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어떻게 그런 반응이 나왔다고 생각합니까.
“가슴이 답답한 거죠. 30년 넘게 여당 의원만 뽑아줬는데 바뀐 게 없잖아요.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데 그걸 터뜨리지 못한 겁니다. 그걸 저를 통해 표출한 거죠.”
김부겸이란 사람 때문인가요.
“사실 저를 믿은 측면이 있습니다. 제가 세 번씩이나 도전했잖아요. 계속 떨어져도 서울로 안 가고 여기서 다시 도전한 것을 좋게 봐준 것 같습니다. 4년 전 총선에서는 40.4%였다가 대구시장 선거에선 수성구에서 50.1%, 이렇게 계속 지지율이 올라갔습니다.”

당선 인사 하는 날 시민들 반응을 보면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다. 지난 3일 지켜본 시지 이마트 앞 빗속 거리 유세에도 많은 사람이 몰렸고, 다음 장소로 옮기기 전 한참 동안 시민들과 악수를 나눠야 했다. 개표 결과 무려 62.3%를 얻어 37.7%를 얻은 새누리당의 거물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가볍게 눌렀다.

이 바람에 대권 후보감으로 들먹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표의 확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은 신중했다.

“정치하는 사람이 왜 야망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가 제 텃밭이 아니잖아요. 저는 아직 여기에 뿌리를 내린 게 아닙니다. 대구를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1년 동안 무언가 성과를 보여드려야죠. ‘이놈 시켜놨더니 확실히 달라지더라’ 하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동안 반대가 야당의 존재 이유
앞으로는 논점·대안까지 제시해야

 여소야대가 돼 버렸네요.
“여소야대라고 해도 집행권이 정부에 다 있고, 여당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야당도 이전보다 책임이 더 커질 겁니다. 잘못된 건 확실히 바로잡아야겠지만 민생 문제 등은 협조를 해야 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여소야대가 되는 바람에 5공 청산도 하고, 광주청문회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잘해야죠.”
‘야당 개혁’을 강조하셨는데 여전히 유효한 거죠.
“그럼요. 지금까지는 반대를 하는 것 자체가 야당의 존재 이유였다면 반대를 하는 이유가 뭐다, 그런 논점과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의원총회 등에서 항상 강경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만 크고, 어떻게든 양쪽을 타협시키고 대화시켜 보자는 목소리는 묻혀 버렸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야당이 압승해 개혁할 생각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야당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닙니다. 사실 역대 선거에서 이번처럼 엉망인 경우를 봤습니까. 야당이 분열되지 않았다면 정말 역사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선거였는데 아쉽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이 지지하지 않으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선거 중에 나온 이야기고… 정말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국민의당이 호남을 차지해 더민주가 비호남 지역에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글쎄요…. 더민주가 호남색을 완전히 벗었나요? 호남을 놓고 국민의당과 경쟁을 한 것 아닙니까.”
국민의당과 통합할 수 있을까요.
“저도 제3당을 해봐서 아는데, 3당이 저렇게 성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안철수 대표가 3당 체제가 필요하다고 해서 나갔는데, 우리가 섣불리 이야기할 수는 없죠. 당분간 이렇게 가면서 협조해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 야권 역량 다 모아도 집권 능력 안 돼
원내 세력 공존, 좋은 사람 영입 필요

야권을 확대 재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나요.
“그럼요. 운이 좋아 이렇게 선거는 이겼지만 우리가 정권을 맡을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까. 현재 원내에 진입한 야당의 역량을 다 끌어모아도 모자랍니다. 우선 이런 세력들을 공존시킬 수 있는 합의와 고려가 우선입니다. 그 뒤에 어떻게든 좋은 사람들을 각 분야에서 영입해야죠. 이 수준 가지고는 (정권 교체를) 못합니다.”
대화와 타협은 방법론에 불과하다, 김 당선자에게 철학이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철학이죠. 강경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문제를 지적하고, 심지어는 판을 깨는 역할만 했단 말입니다. 차선이라든가 대안을 마련하는 데는 서툴렀습니다. 주장의 명료성은 있으나 결과물을 내지 못했죠. 그게 자꾸 국민에게 정치 불신을 부추겼습니다. 앞으로는 반대를 하더라도 논점을 분명히 해서 ‘이런 이유 때문에 반대한다’고 하자는 거죠. 그러면 거기서부터 토론과 타협과 조정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정치를 왜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회적 빈부, 기득권과 신참자, 강자와 약자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며 정치의 과제로 삼았다.

“이런 격차를 그대로 두고는 공동체의 에너지를 모을 방법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이 갈등 속에서 헤맬 테니까요. 그래서 정치를 통해 적어도 이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의 선(善)을 위해 양보를 요구하든, 목표를 요구하든 국민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게 정치라고 봅니다.”

그는 “이번에도 김종인 비대위원회 대표가 몇 가지 과감하게 밀고 간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햇볕정책’은 야당에선 손을 댈 수 없는 성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대표가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의 북한과 핵무장을 한 이후의 북한은 다르다’고 분명하게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 한 사람이 방향 정하는 리더십 한계
87년 국가 운영체제 이젠 바꿔야

대표 경쟁에 나설 생각이 있습니까.
“그동안 중앙당의 흐름에서 좀 떨어져 있었잖아요. 그래서 지금 우리 당이 가지고 있는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지, 그중에 어떤 부분이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으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고민한 뒤에 생각할 문제입니다. 다른 당선자들 생각이 어떤지도 들어봐야 하고….”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더 이상 한 사람에 의해 국가 전체 방향이 정해지고 결정되는 그런 리더십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1987년 체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21세기 디지털시대의 다양한 욕구와 갈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탁월한 리더 한 사람의 선한 의지에 기대하는 국가 운영은 바뀌어야 합니다.”
다당제는 내각제와 어울리죠.
“그걸 내각제라고 하든, 이원집정부제라고 하든 이름은 뭐라도 상관없어요.”
소선거구제에 대해선 어떤가요.
“그것도 마찬가집니다. 지난번에 게리맨더링이라 할 만한 선거구제를 만든 이유가 뭡니까. 이 제도가 가진 맹점인데, 왜 지고지순한 것처럼 끌고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호빵맨’ 별명 붙이고 캐릭터 만들고 … 홈피는 젊은이들 놀이터

시민 대다수, ‘잘 먹는 정치인 뽑아야’-.

핫도그를 한입 가득 문 김부겸 후보의 사진에 큼직한 글씨를 넣어 블로그에 올려놨다. 치킨을 먹는 사진에 ‘먹방 요정 김부겸’…,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각종 캐릭터에 김부겸 얼굴을 넣은 ‘캐릭터 대방출’….

김부겸 홈페이지가 젊은이들 놀이터다. ‘호빵맨’이란 별명을 붙이고, 캐릭터와 사진 또는 거친 만화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설렁한 카톡 대화를 캡처한 사진, 카드뉴스, 동영상도 계속 올라온다. ‘뽐뿌유세단’ ‘벽치기 유세’ 이름도 재미있다.

- 대구 하면 근엄한 보수 도시인데, 캠페인이 너무 파격 아닙니까.

“딸 친구들에게 마음대로 해보라고 맡긴 겁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우리가 알아서 하면 되지만 젊은 감각은 따라갈 수가 없죠. 그래서 맡겼더니 반응이 좋았어요. 초등학생들까지 ‘호빵맨, 호빵맨’ 하며 좋아합니다.”

결국 딸 자랑이다. 그게 다 딸 친구들 작품이란다. 대구시장 선거 때는 둘째 딸인 탤런트 윤세인(본명 김지수)씨가 한몫했지만 이번에는 대학생인 막내딸 김현수씨가 나섰다. 선거 음악에 맞춰 딸이 춤추는 동영상이 인기다.

노인들을 담당한 건 아버지 김영용(78)씨. 김 당선자의 시위 전력 때문에 합수부에 연행되기도 하고, 공군 중령으로 예편했다고 한다. 열심히 노인정을 누비고 노인 공약 아이디어도 내놓는다. 김 당선자는 “어르신 표는 전부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