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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가봤습니다] 꽃게, 금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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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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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 있는 꽃게 경매장 안에 있는 선별기에 어민들이 잡은 꽃게를 내리고 있다. 꽃게잡이 배 한척이 잡은 물량은 10㎏ 남짓에 불과했다. 태안 신진도 꽃게 축제도 물량 부족으로 취소됐다. 유통 업체들도 꽃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선금을 지급하며 어선과 직거래에 나서고 있다. [사진 롯데마트]

지난 8일 오전 충남 보령시 대천항. 매년 서해에서 잡히는 꽃게의 30%가 모이는 주요 산지다. 4월은 암꽃게 제철이다. 바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산란을 앞두고 충분한 영양섭취를 통해 알이 꽉 차고 살이 단단한 암꽃게가 많다. 하지만 제철을 맞았는데도 대천항은 활기를 잃은 채 한산하기만 했다. 드문드문 꽃게잡이 배가 항구로 들어왔지만, 그마저도 텅 빈 배가 태반이었다.

시름에 잠긴 집산지 보령 대천항
중국 어선 남획, 방류사업 외면 탓
어획량 10분의 1, 기름값도 못벌어
지난해 보다 가격 50% 넘게 폭등
유통업계, 안정적 물량 확보 비상

항구에서 만난 꽃게잡이 배 선주 이성수(47)씨는 “올 봄 꽃게로 장사하긴 영 글렀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매 시간에 맞춰 물량을 내리려는 배들이 뒤엉켜 싸움까지 일어났는데, 올핸 빈 배만 들어온다”며 “예년엔 하루 평균 50~60척의 꽃게잡이 배가 한 척 당 100kg을 잡았지만 올해엔 10kg도 안돼 기름값도 안 나올 정도”라고 푸념했다.

항구 인근 꽃게 경매장도 개점휴업 상태였다. 경매 후 꽃게를 보관하는 수조는 텅 비어 있었다. 보령수협이 3년 전 대당 2500만원을 들여 총 6대를 설치한 꽃게 선별기(꽃게 무게에 따라 자동 분류하는 기계)도 가동을 거의 멈췄다.

경력 15년차 꽃게 중매인 조상일(40)씨는 “암꽃게 철(3월 중순~5월 말)이면 오전 8시부터 하루종일 경매가 이어졌는데 물량이 없어 오후 경매가 계속 취소되는 상황”이라며 “이젠 일자리가 없어질까봐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꽃게가 사라지고 있다. 국내 꽃게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서해 지역 어획량은 큰 폭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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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에 따르면 2011년 2만6000t에 달했던 국내 꽃게 생산량은 지난해 1만6000t으로 40% 가량 감소했다. 올해도 어획량 감소가 이어질 전망이다. 서해수산연구소가 꽃게의 자원량과 유생 분포밀도, 척당 어획량, 수온 등을 분석한 결과, 올해 꽃게 어획량이 지난해보다 최소 10~3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이 연구소의 임양재 연구원은 “수온은 올 겨울이 지난해보다 1.4도 정도 더 높게 형성돼 꽃게 생육에 알맞은 조건을 보였다. 하지만 꽃게 자원의 지속적인 감소와 과도한 어획이 이뤄지면서 최근 5년 새 꽃게 생산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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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꽃게 어획량 감소의 원인은 뭘까.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어민들은 최근 수년 동안 암꽃게 제철만 되면 서해는 중국 어선으로 뒤덮인다고 했다. 실제로 인천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3월 들어 하루 평균 70여 척의 중국 어선이 서해에 출몰하고 있다. 전월 평균(26척) 대비 3배나 늘어난 수치인데, 집계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어민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선단을 이뤄 움직이는 중국 어선이 저인망 그물을 이용해 서해 꽃게를 싹쓸이한다는 것이다.

어린 꽃게(치게) 방류 사업이 시들한 것도 어획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삼성중공업과 정부, 지자체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꽃게 치게 방류 사업을 진행했지만 어획량이 회복되면서 2014년 이후 거의 중단됐다. 여기에 북한 미사일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남북관계 경색도 꽃게 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원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어민은 “꽃게는 다른 수산물에 비해 가격이 높아 ‘서해의 한우’라 불린다”며 “배를 매물로 내놓는 등 조업을 포기하는 어민들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꽃게 어획량 감소는 산지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령수협에 따르면 대천과 신진도 등 꽃게 산지 경매 시세는 지난해 kg당 평균 2만1000원 선에서 올해는 평균 3만6000원 선으로 50% 이상 올랐다. 가격 상승으로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은 간장게장 집이다. 꽃게 중개인들은 “꽃게 어획량이 절정에 달할 때 우후죽순 생겼던 간장게장 집이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서울 강남에 있는 유명 간장게장 집도 물량 확보가 어렵자 산지를 돌며 꽃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들도 봄 꽃게의 안정적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롯데마트 곽명엽 수산 상품기획자(MD)는 “배 유류비나 인건비와 같은 비용 부담없이 꽃게를 잡을 수 있도록 어민들에게 20억원 규모의 선급금을 지급했다”며 “이와 함께 배와 직거래를 통해 단독 작업장을 운영하면서 봄 꽃게 물량 사전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어민들은 ‘서해 꽃게 벨트’가 무너지는 날이 멀지 않다고 했다. 그들은 꽃게 치게 방류만이 꽃게 벨트를 살리는 대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꽃게 도매업을 하는 KB글로벌의 김형추(43) 대표는 “꽃게 물량의 지속적인 감소는 대규모 방류 사업 중단 때문”이라며 “서해안을 기반으로 한 지방자치단체들이 공동으로 꽃게 방류 사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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