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년 인권에 눈감은 ‘45초 햄버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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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간이 노이로제(신경증)를 앓게 된 건 시계를 사용하면서부터”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주는 압박감은 그만큼 크다. 더욱이 초 단위로 일해야 한다면 초조와 불안에 정신이 잠식될 수밖에 없다. ‘45초 햄버거’ 논란을 단순히 패스트푸드점 내부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알바노조는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4월 13일)을 이틀 앞둔 그제 서울 종로구 한국맥도날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0개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45초 햄버거 폐지 ▶17분30초 배달제 폐지 ▶고무줄 스케줄 개선 ▶인력 충원 ▶산재 예방을 위한 목장갑·토시 지급 등이다. 이 중 특히 시급한 현안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45초 햄버거와 17분30초 배달제다. 45초 햄버거는 매장에서 주문하면 주방에서 45초 안에 햄버거를 만들어 고객이 1분20초 안에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7분30초는 주문 전화 후 고객에게 제품이 배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매장에 따라 이 시간 제한을 지키지 않는 곳들이 있다고 해도 초 단위 시스템 속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뜨거운 기름이나 패티에 손을 데곤 한다. 또 오토바이 배달 직원은 신호 위반이나 인도 주행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사고 위험에 노출된다고 한다. 2011년 피자업체의 ‘30분 배달제’가 폐지된 것도 10대 알바생의 안타까운 죽음 때문이었다. 매년 배달 아르바이트 청소년 500여 명이 배달 중 교통사고로 다치고 10여 명이 숨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안전보건공단 자료).

한국맥도날드 측은 “가이드라인일 뿐 강제 사항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본사 가이드라인이 개별 매장에 내려가면 곧 법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초 단위 공정 관리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작지 않다. 맥도날드 측은 작업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고객들 역시 빠른 서비스 재촉이 힘든 여건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위험에 놓이게 할 수 있다는 자각을 해야 할 때다. 빠른 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