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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개' 개봉 앞둔 정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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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개라고 불리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16일 개봉하는 영화 '똥개'(감독 곽경택)에서 백수건달 철민 역을 연기한 정우성(30). 그동안 눈빛 하나만으로 수많은 여성 팬들을 쓰러뜨리던 이 스타를 상징하는 단어는 반항아, 아웃사이더, 안티 히어로, 고독, 우수 등이 아니던가.

영화 속 철민은 정우성이 쌓아온 이미지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무릎 튀어나온 트레이닝복 바지에 목 늘어진 티셔츠 차림. 딱히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날 그날을 나른하게 살아가는 소도시 밀양의 청년이다.

경찰인 철민의 아버지(김갑수)가 거둬준 비행소녀 정애(엄지원)의 대사를 빌자면 "하는 짓은 비리비리한데 성깔은 좀 있어보이기도 하는, 헷갈리는"인물이다. 별명인 똥개는 어렸을 적 친구처럼 지내던 '변견(便犬)'의 이름이다.

"억울하긴요, 마음에 쏙 드는 걸요." 마음에 든다? "철민은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은 데가 있어요. 아이들은 사소한 데 목숨 걸잖아요. 밥상에 오른 달걀 프라이를 놓고 아버지하고 싸우기도 하고 정애가 오니까 안방 TV를 누가 보느냐는 걱정부터 하는 식이죠. 제가 이제껏 연기한 역할과 참 다르지 않나요? 사건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사건을 만들어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이잖아요."

콧물을 질질 흘리고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는 철민은 정우성이 했기 때문에 확실히 더 자극적이다. 특히 유치장 안에서 견원지간인 진묵(김태욱)과 벌이는 싸움에서 그는 더할 수 없이 망가진다. 흰 팬티 한장 달랑 걸치고 입에 수건을 문 뒤 상대가 넉다운될 때까지 맨주먹으로 싸우고 또 싸우는 장면 그 어디에도 우리가 알던 정우성은 없다.

그는 "해갈이 됐다"고 했다. "저에게 들어오는 대본은 늘 똑같았어요. 반항아 정우성, 분위기 잡는 정우성. 눈에 힘 주는 정우성. 이미 만들어진 정우성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길 요구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똥개'는 전혀 달랐어요. 대본을 읽어보니까 내 목마름을 풀어줄 것 같은 기대가 생기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그는 곽 감독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어떤 배우든 10년쯤 하면 어떤 역을 맡겨도 준비가 돼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감독이 배우에게 변신할 것을 요구하느냐, 아니냐죠. 감독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배우 혼자 바뀌겠다고 하면 불협화음이 생기니까요."

우스갯소리로 "감독이 눈을 3분의2만 뜨라고 했다고 들었다"고 묻자 "원래 눈매가 그렇게 생긴 걸 어쩌냐"며 웃는다. "저 정말 눈에 힘주는 거 아니에요. 눈에 힘 주면 눈물만 나지…. 철민이가 하릴없는 백수니까 나른하고 게으른 느낌이 필요했어요. '철민스럽게'보이려고 애썼죠."

철민과 정우성의 공통점이 있기는 할까. "참 찾기 힘들죠. 게으른 게 좀 비슷하려나?(웃음). 대사에도 있지만 '한번 물면 놓지 않는'건 닮았어요. 특히 인간 관계에서요. 한번 사귀면 10년이 넘게 가는 진득함이요."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경찰서 수사과장인 아버지와의 관계다. 경상도 식의 퉁명스러운 말이 오가고 아웅다웅 싸우면서도 속깊은 친구사이같은 도타움이 보기 좋다. "부럽죠. 저도 그렇지만 특히 우리 나라의 아버지와 아들은 친구같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 영화가 컴퓨터, 인터넷이 없는 설정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살붙이같던 똥개를 친구들이 잡아먹었을 때도 아버지한테 쪼르르 달려가 이르잖아요. 애처럼."

영화 속 철민은 고속도로 개통을 두고 벌어진 이권 사업에서 동네 친구들이 피해를 보자 "요번에는 확실하게 쫌 보이주야 한다"고 불같이 분노한다. 정애가 묻는다. "머를 보여주는데?" 그의 대답. "내를."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리지만 정우성이 '똥개'에서 확실히 자신을 보여준 것만은 사실이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똥개처럼 한번 마음 먹으면 외모쯤이야 잠시 버릴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갖고서 말이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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