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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젓가락 주면 불법 식사, 이쑤시개로 먹으면 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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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무소속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의 선거사무소에서는 방문하는 주민들에게 떡과 초콜릿, 김밥 등 간식거리를 내준다. 공직선거법상 허용되는 ‘통상적인 다과(茶菓) 제공’이다.

지역구민 주례 서주면 불법 기부
개그맨이 후보 위해 개그 해도 안 돼
가수 초청 노래시켰다가 벌금형

하지만 가끔씩 일부 방문객이 “왜 젓가락은 없느냐”고 물을 때 사무원들은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그럴 때마다 사무원들은 ‘젓가락과 함께 내놓는 음식은 불법 식사 제공’이라는 선거관리위원회 유권해석을 설명하곤 양해를 구한다. 방문객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뒤 이쑤시개나 맨손으로 간식을 집어 먹는다고 한다.

이처럼 상식과 거리가 있는 법 규정으로 인해 웃지 못할 장면이 전국 700여 개의 총선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에겐 아리송한 규정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선거법을 위반할 수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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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후보자들이 겪는 고충 중 하나는 ‘주례 거절’이다. 공직선거법은 현역 의원과 후보자에게 기부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출마 지역과 연관 있는 사람의 결혼식 주례도 기부 행위로 간주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후보는 “후보자가 주례를 설 수 없다는 게 명문화돼 있다고 설명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희국 의원은 지난해 11월 후보자의 주례 금지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가수나 코미디언 등 연예인들도 지지 후보를 위해 함부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면 안 된다. 가수가 유세 현장에서 후보자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 또한 불법 기부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2011년 출판기념회를 연 새누리당 박상은 전 의원은 중학교 후배인 가수 박현빈을 초청해 노래 두 곡을 부르게 한 혐의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달엔 인천 서구의 한 예비후보가 사무소 개소식을 찾은 성악 전공 친구에게 가요를 부르게 한 혐의로 선관위로부터 제재 조치를 받았다. 허용되는 노래는 애국가뿐이다. 코미디언도 후보자 지지 발언을 할 순 있지만 개그를 선보여선 안 된다. 지난 2월 정종섭(대구 동갑) 후보의 사무소 개소식 때 사회를 본 코미디언 김종국씨가 성대모사를 자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반인도 주의해야 할 대목이 있다. 후보를 지지하는 육성 발언은 허용되지만 확성기 사용을 위해선 선거사무소의 연설·대담자로 지명돼야 한다. 또 8~9일(사전투표)과 13일 투표를 마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투표 인증샷’을 올릴 때도 자신이 찍은 후보를 공개하면 불법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도한 규제로 선거가 축제가 되지 못하고 선관위의 감독을 받는 관제 행사가 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정도의 과도한 규제는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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