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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이폰처럼…전기차 테슬라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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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첫선을 보인 보급형 전기차 ‘모델3’. [사진 각 사]

‘테슬라 신드롬’이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강타했다. 무기는 2000만원대 준중형 전기차 ‘모델3’다. 49개국 전시장마다 사전 예약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전시장이 없는 한국에서도 이찬진(52) 전 드림위즈 대표, 구태언(47) 변호사 같은 ‘얼리어답터’가 온라인 예약에 참여했다. 자동차 동호회 인터넷 카페엔 “모델3가 2000만원대라면 당장 사고 싶다”는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사흘 새 27만대…49개국서 사전 예약 행렬
내년 말에 나오는데 예약금만 벌써 3000억원 확보
"충전 인프라 확보가 핵심" 국내 업계 긴장 속 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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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현지시간) 직접 신차를 공개했던 일론 머스크(45)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2일까지 모델3의 사전 계약 대수가 27만6000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0년 처음 출시한 베스트셀러 전기차인 닛산 ‘리프’ 누적판매량(20만2000대)을 훌쩍 넘어섰다. 2017년 말부터 인도 예정인데도 불구하고 확보한 예약금만 3000억원에 달한다.

‘테슬라 열풍’의 비결은 7000만~8000만원대 고급 전기차를 만들어 온 테슬라가 처음으로 보급형 전기차를 선보였다는 데 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르는 데 6초 걸리는 스포츠카 못지않은 주행 성능에 ▶테슬라 특유의 파격적인 디자인 ▶압도적인 1회 완충 시 최대 주행거리(346㎞)를 갖췄는데도 저렴한 가격(4020만원·정부 보조금 받을 경우 2000만원대 구입 가능) 등 눈길을 끌 요소를 두루 갖췄다. 가격은 국산 전기차인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4000만원), 르노삼성차 SM3 ZE(4190만원)와 엇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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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전기차인 르노삼성차 SM3 ZE(左),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右). [사진 각 사]

테슬라는 고성능 전기차 생산을 위해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주행거리가 늘어나지만 안전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전용 무료 충전소인 ‘수퍼 차저’를 설치하고 배터리 교체 서비스도 도입할 계획이다. 법조계 정보기술(IT) 전문가로 꼽히는 구태언 변호사는 “테슬라 전기차는 바퀴 달린 컴퓨터다. 그러면서도 모델3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나다. 자동차 산업의 혁신 아이콘인 만큼 아이폰을 처음 샀을 때처럼 가장 먼저 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테슬라의 국내 상륙을 두고 애플이 아이폰을 무기로 당시 대세였던 피처폰 업계를 강타한 2007년의 ‘데자뷔’(재현)란 분석이 나온다. 아이폰 출시 당시 노키아·소니는 물론 삼성·LG·팬택 같은 전통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는 피처폰 성공 신화에 매달리다 스마트폰 경쟁에서 뒤처졌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테슬라 신드롬’을 아이폰 출시 때와 같은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전기차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휴대전화 제조사가 무방비로 당했던 아이폰 신드롬 때와 달리 지금 자동차 업계는 저마다 전기차 개발에 한창”이라며 “한국처럼 전기차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에선 테슬라도 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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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차 관계자는 “테슬라는 아이폰 같이 세상에 없던 차를 만든 게 아니다. 이미 브랜드마다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고, 또 기술이 급속도로 상향 평준화하고 있다. 다만 테슬라란 브랜드 파워가 더해진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전기차는 내연기관(엔진)이 아닌 배터리 싸움이란 점에서 기존 자동차 업체들에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의 경우도 삼성SDI·LG화학·SK이노베이션 같은 배터리 업체와 손잡지 않고선 배터리를 자체 개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테슬라의 경우 파나소닉과 손잡고 5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시장은 이미 테슬라의 미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테슬라의 지난해 말 기준 시가총액은 34조원으로 현대차(30조원)를 넘어섰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래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려면 현대차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2.6%)부터 도요타(3.7%)·BMW(5.6%)·포드(4.5%)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며 “전기차 배터리 업체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선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선우명호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애플·구글 같은 IT업체가 앞다퉈 뛰어들어 숨 가쁘게 바뀌는 자동차 시장 흐름을 놓치면 단번에 도태할 수 있다”며 “노키아의 몰락을 교훈 삼아 테슬라의 ‘파괴적 혁신’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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