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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안정'… 중산층 위기 곱씹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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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요즘 유럽 연극계는 독일의 젊은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37.사진)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그는 서른 살에 독일의 15개 국립극장 중 하나인 베를린 샤우뷔네의 예술감독을 맡았고 2003년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을 파격적으로 해석한'인형의 집-노라'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객원 예술감독으로 위촉받았다.

오스터마이어가 한국 연극팬들을 만난다. 5월 13~14일 '2005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초청으로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리퀘스트 콘서트'(2003년)를 상연하고, 6월 8~10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화제작 '인형의 집-노라'를 선보인다.

18일 독일 뮌헨의 한 연극 연습실에서 5월에 상연할 신작을 준비 중인 오스터마이어를 만났다. 1m80㎝를 훌쩍 넘는 키와 낭랑한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단순히 집을 떠나는 원작과는 달리'인형의 집-노라'에서 노라가 남편을 쏴죽이도록 한 것은 관객들을 자극.선동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위세를 떨쳤던 여성해방 운동이 지금은 죽어버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남.녀 간의 불평등은 여전한데도 말이다.

그러나 사회비판적인 연극은 아무래도 지루해지기 쉬운 게 문제다. 오스터마이어도 "어떻게 하면 연극이 흥미로울 수 있는가를 항상 고민한다. TV 드라마나 CF.영화 등에서 특정 장면들을 따온 후 TV에서는 볼 수 없는 과격한 행동을 보여주곤 한다"고 말했다. 다른 매체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을 연극에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평소 당연시하던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인형의 집-노라'는 원작이 쓰여진 19세기 말이 아니라 현대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노라의 가족도 상위 5~10% 안에 드는 '부유한 중산층'으로 설정했다. 중산층 가정의 '허울 뿐인 안정'을 폭로하겠다는 취지다. 강남 팬들이 몰려들 서울 공연이 기대되는 이유다.

오스터마이어는 "그렇다고 연극으로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연극의 기능은 어디까지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 해결책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 연극은 신문이나 서적처럼 사회의 공론이 형성되는 장이었다. 지금은 잃어버린 그런 기능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뮌헨=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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