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깊고 푸른밤』을 보고 안 병 섭 <서울예전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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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배창호의 여섯번째 작품인 『깊고 푸른밤』은 미국에서 올 로케이션한 이색적인 작품이다.
미국에서 위장 결혼해 영주권을 얻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청년 백호빈(안성기)과 끝내는 그를 사랑하게되는 「제인」(장미희)의 관계를 밀도있게 그림으로써 한편으로는 영주권을 얻으려는 한 청년의 처절한모습과 다른 한편으로서는 여자의 애정과 진실의 일면을 그리려고했다.
「죽음의 계곡」에서의 강렬한 정사장면에 이어 여자를 헌신짝처럼 버린 백호빈은 끝내「그레고리 백」이 되어 영주권을 손에넣게 되는데 그 동기나 위장결혼의 파트너로 생활하는 「제인」이 그에게 마지막 사랑의 승부를 거는 심리적 타당성등이 강력하게 부각되어 있지 못한점이 아쉽다. 그러나 후반의 극적인 구성은 배창호다운 짜임새와 흥미있게 이끌어가는 리듬을 따라 영화적 묘미를 보여준다.
영주권을 얻은 직후 공중전화박스에서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의 3백60도 카메라회전은 미국에서만 가능한 촬영기법으로 그 시원한 효과가 잘 살았다. 이민국관리국 앞에서 미국국가까지 부르는 그 몸부림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아내로부터온 카세트테이프를 절제하며 마지막 장면에 사용한 처리는 탁월하고 이 영화의 묘미를 살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배창호는 이 작품에서 흥미롭고 화려하고 매끈한 흥행적 감각은 살리고 있지만 보다더 사실적이고 깊이 있는 미국이민들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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