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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노조 굴복…「대처」인기 상승|노조파업 증식…앞으로의 영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1년동안 영국 사회를 온통 흔들어 온 탄광노조 파업이 마침내 끝났다.
강경파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업대열에 섰던 광부들이 계속해 대거 이탈, 직장에 복귀함으로써 노조지도부는 전국대표자 회의를 소집, 투쟁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일자리를 떠나 1년간 거리에 나섰던 광부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못한 채 참담한 좌절감만 안고 석탄 갱구로 돌아가게 되었다.
탄광 노조지도부가 백기를 들게된 것은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정부 및 경영자(석탄공사)측의 일자리 복귀 회유 캠페인이 먹혀들어가 광부들이 속속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작년 3월6일부터 사작된 탄광 노조파업은 처음부터 국민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아 실패로 끝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노조측은 적자를 많이 보는 탄광은 폐쇄하겠다는 국영 석탄공사의 경영방침에 반대, 투쟁을 시작한 것인데 순전히 노사간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대처」 보수당 정부를 뒤집어 엎겠다는 정치적 투쟁의 본색이 드러나면서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
또 하나의 패배원인은 노조지도부를 장악한 노조지도부(위원장 「아더·스카길」) 가 노조원들에 대한 찬반 투표를 통한 적법절차를 밟지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온건파 및우파 노조원들의 반발을 사 파업 명령에 불복, 일을 계속하는 바람에 노조가 양분됐다.
전체 탄광노조원 18만6천명중 약4만명은 처음부터 투쟁에 전혀 가담하지 않았다.
지난 연말부터 파업투쟁 대열은 날이 갈수록 무너져 지난 2월말로 일자리로 복귀한 광부수는 모두 9만4천명에 달해 50%를 넘겼다. 50%복귀를 계기로 파업은 급속히 와해됐다.
파업이 계속되는 동안 영국의 매스컴은 거의 매일 머리기사와 해설로 광부파업 진행 상황을 보도했다.
운수노조·부두노조등 다른 노조들도 여러차례 동정파업읕 시도했고 노조 총연합회가 공동투쟁을 선언했지만 철의 여재상 「대처」가 끝내 굽히지 않음으로써 노조의 시도는 허사로 끝났다.
정부측의 입장은 지금과같은 과학기술시대에 투자의 효율성을 생각지 않고 고용만 내세워 비경제적 산업을 마냥 유지해 간다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이다.
정부는 적자보는 탄광을 위해 연간 7억파운드의 지원을 계속해 오고있다.
지난 74년과 79년 두차례(「히드」 보수당정부와 「갤러헌」노동당정부)정부를 무너뜨린 노조의 연합투쟁이 이번엔 실패로 끝난것은 무엇보다도 집권보수당이 절대다수 (하원6백50석중 3백97석) 를 차지하고 있고 여기에 「대처」 수상의 강한 의지와 지도력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항만부두 노조와 철도운수노조가 탄광노조에 동조파업, 경제가 위기에 몰릴때도 「대처」는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많은 영국사람들은 「히드」나 「갤러헌」같았으면 그런 상황에서 노조측의 요구에 굴복했을 것이라고 믿고있다.
「대처」수상의 기본입장은 노조의 파업병, 이른바 「영국병」을 고치지 않으면 영국의 장래는 없다고 믿은 것이다.
탄광노조파업의 종식으로 영국경제는 한숨을 돌리게 됐고 「대처」에겐 커다란 승리감을 안겨주였다.
「대처」보수당 정부는 탄광노조와의 대결에서 이긴 것이 포클랜드 전쟁승리에 못지않은것으로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대처」의 인기가 크게 올라가고 대신 「키노크」노동당 당수의 인기가 떨어진 것은 이같은 사정을 반영한다.
1년간의 탄광노조파업 홍역으로 영국사회는 노조에 새로운 현실주의를 일깨웠고 가격좌파세력은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훈을 얻기까지는 치른 대가가 실로 엄청나다.
탄광노조의 파업으로 그동안 영국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약 50억파운드 (약 6조원)에 달하고 GNP성장률의 0·5∼1% 저하를 가져왔다.
파업 데모대와의 충돌로 경찰관 3천5백명이 부상했는가 하면 9천여명의 광부가 연행되었다.
그것보다 좀더 심각한 것은 계층간의 대립·균열을 심화시킨 것이다.
그 후유증이 모두 아물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런던=이제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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