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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고시 8회군단」|법조계의 「태백산맥」…그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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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때 법조계의 태백산맥이라 일컬어지던 이른바 「고시 8회군단」의 「검채수단」이 서서히 퇴장하고 있다.
이번 검찰인사에서 장관과 검찰총장등 행정 및 실무책임자를 제외한 고시 8회 출신의 절대다수(7명중6명)가 제2선으로 물러나으로써 한때는 검찰운영의 중심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눈총(?)을 받아야하는 전재로까지 밀려나고 주요검사장 자리를 13회가 차지함으로써 사실상 8회시대의 종막을 예고하고있다.
반면 「법원수단」은 아직까지 8회의 전성기. 2명의 대법원판사를 비롯, 사법연수원장·고등법원장·법원행정처차장과 8개지방법원장을 차지해 법원행정의 중추를 이루고 있어 검찰과 좋은 대조.
법원측의 이같은 전성기는 이미 4년전 검찰에서의 경우와 같아 법원쪽이 아직까지는 검찰보다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인사를 한다는 속성을 보여주는것.
이번 검찰인사를 계기로 한때 주목의 대상이 됐던 「고시8회」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본다.

<고시8회>
56년6월에 치른시험에서 모두 1백8명이 합격, 58년 12월 배명인 (전법무장관)·김병우 (전대검 특별수사부장)·정기승 (서울형사법원장)·양헌 (변호사) 등 30여명이 첫 그룹으로 임관했다. 숫자가 많다보니 임관도 여러차례로 나뉘어져 지연되는 바람에 자유당·과도정부·민주당·5·16이후등 임명권자가 속한 정권이 각각 다를수밖에 없었다.
고시1회부터 7회까지의 총합격자를 모두 합쳐봐야 1백51명이었으니 8회의 숫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수 있다.
81년이후 3백명씩 뽑는 사법시험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고시 16회중 합격자수는 13회의 1백10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당시 1백8명이란 많은 합격자를 낸 것은 6.25이후 법조인력이 극도로 부족했는데다가 응시자가 전년도 보다 2·5배나 는 2천8백55명이나 됐기때문.
1차합격자 1백59명 가운데 구술시험에서 51명이나 무더기로 탈락시킨것도 전례없던 일이었다.

<검찰>
50여명이 검사로 임관됐으나 선두그룹은 79년2월 김치열장관에 의해 검사장급으로 발탁된 배명인· 김석휘· 정치근·이영욱·김병우·이명희·김성기씨등 7명.
그러나 8회가 검찰에서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81년4월. 전국검찰의 검사장급 30명중 17명을 고시8회가 휩쓸면서 화려한 팡파르를 물렸다.
이같은 8회 러시에 대해 당시의 한 검찰간부는 『곧 8회가 총장을 차지할 것이고 그때는 동기생들이 모두 물러나게 될것이므로 8회시대는 단명할것』 이라고 예견하기까지 했다.
이는 일본의 경우 검사총장이 임명되면 다른 재조의 동기생들을 불러 『협조해 달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는데 어깨를 맞으면 물러나는것이 관례로 되어있기 때문.
실제로 이때 고시2회인 허형구씨가 검찰총장이 되자 동시생인 문상익씨(당시 수원검사장)가 사표를 냈었다.
8회가 처음으로 검찰의 대권을 잡은것은 그로부러 불과8개월후인 81년12월. 당시 정치근부산검사장이 검찰총장으로 발탁되면서 였다. 정총장의 발탁은 검찰사상 가장 층격적인 인사로 몇단계를 뛰어넘었던 것.
이때 8회 동기생들이 무려 25명이나 검사직에 있어 휴유증이 예상됐으나 소위 선두그룹을 포함, 검사직을 떠난이는 아무도 없었거 자리바꿈을 한 정도였다.
정치근총장이 5개월만인 82년5월 법무장관으로 영전하고 동기생인 김석휘총장이 들어서면서 검찰수뇌부는 명실공히 8회시대가 열렸다. 한달만에 정장관이 이·장사건의 후유증으로물러났으나 곧이어 배명인장관·김석휘총장의 8회체제가 다시구축됐고 그후 2년8개월간 13명의 8회가 이런 저런 이유로 조용히 퇴장했다.
검사장급에서 우선 김성기당시대구고검장이 사회정화위원장으로 전출했고 이유기·강달수씨가 법복을 벗었으며 최근에는 송병철씨가 물러났다. 검사장이 되지 못하고 지방의 지청장 또는 고검검사로 나아있던 동기생9명도 중간중간에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이번 인사에 앞서 8회의 이용식대검총무부장이 사표를 냄으로써 검찰에 남은 8회는 장관·총장을 제외하고 7명뿐.
검찰내부에서는 이번 인사로 미루어 볼때 8회동기생끼리의 장관∼총장체제는 김장관∼서총장이 마지막일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
이는 이번 인사가 다음인사부터는 검찰대권을 8회 이후로 넘겨준다는 의지를 강하게 담고있기 때문이다.
고시8회는 현재까지 3명의 장관(정치근·배명인·김석휘)과 3명의 총장(정치근·김석휘·서동권) 을 배출해 놓고있다.

<법원>
보수적이고 서열을 중시하는 법원에서는 8회가 계속 중추역할을 맡고있다.
선두주자는 81년 46세로 가장 먼저 대법원판사에 오른 이회창대법원판사. 1년후에 오성환대법원판사가 뒤를 이어 상벽이며 선두그룹인 조언사법연수원장이 건재한다.
이밖에도 고등법원장1명(배석)을 비롯, 법원행정처 차장과 서울민·형사법원등 8개 주요 지방법원장을 맡고 있어 8회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셈.
사법부에는 대법원판사에 훨씬 선배들이 많아 8회시대는 오랫동안 가능할 것이며 이들이대거 대법원판사로 등용될날도 멀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재야 법조계>
8회에는 합격자도 많았지만 두드러진 인재도 많았다.
조· 황선금· 김성기·이중근·김진석· 유상호· 권종량· 도태구씨등은 대학3학년때 합격한 재학생 그룹.
임관을 기다리는동안 안경상·김진우씨등은 경찰서장을 지냈고 황선금씨는 변호사를 했으며 이명희씨는 대학에서 강의를 맡았었다.
유상호 (민정·합천)·이완돈(신민·안양)씨가 지역구 출신이고 김성기·이영욱·임두빈씨등이 민정전의 전국구로 모두 5명이 12대의원에 당선됐다.
이밖에 한승혜·용남진·이기홍· 민경완· 강대헌· 양헌· 용태영·이세중씨등 70여명이 전국에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허남진· 신생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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