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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대 현대증권 인수전, KB가 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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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증권업계 마지막 대형 인수합병(M&A) 매물로 꼽혔던 현대증권(자기자본 기준 6위)이 KB금융지주 품으로 들어간다. 현대증권 매각주간사인 한영회계법인은 31일 “KB금융을 현대증권을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인수 땐 증권업계 빅3 도약
현대상선도 회생 발판 마련

KB금융은 인수대금으로 1조1000억~1조2000억원을 제시해 경쟁자인 한국투자금융지주, 홍콩계 사모펀드(PEF) 액티스를 제쳤다. 2013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지난해 12월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연이어 밀렸던 KB금융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증권사 인수에 성공했다. 반면 한국금융은 1조원 이상을 썼지만 대우증권 인수전에 이어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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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의 인수 대상 지분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22.43%)을 포함한 총 22.56%다. KB금융은 4월 7일 현대상선과 주식매매 계약을 맺는다. 정확한 인수 가격은 이날 공개된다. 인수절차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KB금융은 증권업계 18위(자기자본 6000억원)인 계열사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을 합병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KB투자증권·현대증권 합병 법인은 자기자본 3조9000억원으로 미래에셋증권·대우증권(합병 시 7조7500억원), NH투자증권(4조5300억원)에 이어 증권업계 3위로 도약한다.

승부를 가른 건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었다. KB금융에 따르면 윤 회장은 시장에서의 평가보다는 현대증권이 KB금융 가족이 됐을 때 가져올 시너지를 생각해 가격을 정하자며 인수 의지를 다졌다. 애초 금융권에서는 현대증권의 인수가격이 7000억원 안팎에서 결정될 것으로 봤다. 지난해 현대증권 최종 인수에 실패한 일본계 오릭스PE가 제시했던 가격이 6500억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회장은 초기 가격의 두 배 정도인 1조1000억~1조2000억원을 제시했다. KB금융 관계자는 “윤 회장이 ‘매년 이익이 3000억원 이상 날 텐데 가격을 더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며 담당자를 독려했다”고 말했다.

윤 회장과 KB금융엔 지난해 12월 대우증권 인수 실패가 오히려 약이 됐다. 당시 KB금융은 누구보다 증권업 보강이 절실했지만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베팅에 밀렸다. 이후 현대증권이 매물로 나오자 윤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반드시 잡겠다”며 일찌감치 인수의향서를 낸 뒤 준비에 들어갔다. 그간 KB금융 M&A에 부정적이었던 사외이사들도 이번에는 “저금리 기조에 증권사를 키워야 성장할 수 있다”며 적극 지원했다.

이에 따라 KB금융은 ‘1등 금융그룹’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데 한층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론 그룹의 모체인 KB국민은행과 지난해 인수한 KB손해보험(옛 LIG손해보험), 현대증권의 시너지를 통해 ‘금융빅뱅’ 시대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현대증권을 ‘한국형 BoA메릴린치’로 키우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2008년 메릴린치증권을 인수한 뒤 은행 자산관리와 기업금융을 결합해 시너지를 낸 사례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얘기다. 윤종규 회장은 “이번 M&A는 인내와 전략적 선택에 따른 결과”라며 “현대증권 인수를 계기로 KB금융그룹이 국민의 자산 증식과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지혜 교보증권 연구원은 “KB금융은 현대증권 인수로 수익구조를 다변화시 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증권 내부에선 KB금융의 인수 소식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현대증권의 한 직원은 “증권사 규모가 큰 한국금융지주가 인수하면 구조조정을 크게 할 거란 우려가 많았다”며 “KB금융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대증권 매각가가 예상보다 높게 정해지면서 현대상선 구조조정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현대증권 매각 으로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반겼다. 현대상선은 매각대금으로 3600억원 규모의 주식담보대출을 먼저 갚은 뒤, 나머지 금액은 채권단과 상의해 사용처를 정할 계획이다.

이태경·이승호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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