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제임스 후퍼의 비정상의 눈

기기에 너무 의존하며 운동하고 있는 우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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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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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후퍼
JTBC ‘비정상회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전 출연자

학창 시절부터 하루 일과를 마치면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탔다. 휴일에는 등산을 즐겼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익숙한 습관에 변화가 생겼다. 각종 ‘스마트’ 기기를 팔이나 다리에 찬 사람들이 스쳐가는 것을 보게 되면서다.

이들은 가슴에 심장박동 모니터를 장착하고 스마트워치로 걸음 수를 계산한다. 최신형 블루투스 헤드폰에서 나오는 일정한 박자의 리듬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켠 스마트폰으로 운동 거리를 계산한다. 물통이 달린 허리띠를 차고, 종아리 근육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압박 양말을 무릎까지 올라오게 신는 것은 필수다. 인간이 내는 가쁜 숨소리는 운동거리와 칼로리 소모량을 알려주는 기기의 전자음성에 묻힌다.

각종 스포츠 기기의 발달이 인간의 운동 성과를 높이고 더욱 즐겁게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지나친 기기 의존은 오히려 운동의 즐거움을 떨어뜨리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운동의 미덕 중 하나는 마음속에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복잡한 생각과 중요한 결정들로 얽혀 있는 머릿속은 운동을 하는 신체의 움직임 자체에만 집중해 있는 그 순간에는 말끔하게 씻겨 내려간다. 하지만 우리의 운동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이 기술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던 그 짧은 순간의 기쁨을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내가 어제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내 평균 뜀박질 속도가 친구보다 빠른가.’ ‘심장 박동수가 너무 높은 건 아닌가.’ ‘이 짜증나는 노래는 왜 자꾸 계속 나오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운동은 사무실에서 받던 스트레스의 연장이 되기 일쑤다.

어떻게 해야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즐기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이 힘든 순간에 이를 때도 다음에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운동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 쉴 새 없는 전자음과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기기들은 잠시 벗어두고 산이나 들로 나가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보자. 현대 기술들의 방해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운동 경험만 느껴보자.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선별적으로 고르고 거기에 너무 의존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운동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답답한 마음과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운동이라는 신성한 안식처에까지 굳이 각종 스트레스를 데려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제임스 후퍼 JTBC ‘비정상회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전 출연자